모든 국립공원의 어머니, 옐로스톤

 

최숙희

 

냉장고 옆에는 미국 지도가 붙어 있다. 50개 주 가운데 다녀온 곳마다 노란 스마일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나의 작은 취미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지도위에 스티커 세 개가 늘었다. 와이오밍(Wyoming), 몬태나(Montana), 아이다호(Idaho) 세 주에 걸쳐있는 옐로스톤에 다녀온 덕분이다.

 

남편과 함께한 3박 4일 여정이었다.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까지 비행기로 이동했는데, 몰몬교 사원과 시청사가 인상 깊었다. 몰몬교도들이 척박한 서부에 터를 잡고 사막 한가운데 이토록 견고하고 거대한 도시를 일구기까지 흘렸을 땀과 수고를 생각하게 되었다.

 

옐로스톤은 1872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하는 데 익숙했던 시대에 자연을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겠다는 발상은 놀라운 선택이었다. 사람들이 옐로스톤을 ‘모든 국립공원이 어머니(Mother of all National Parks)’라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물론 여행길이 감탄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베어월드에서 만난 하얀 알비노 엘크(Albino Elk)는 신비로웠지만, 인근 월마트에서 제공한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빵을 먹는 곰들의 모습은 어쩐지 서글펐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속에서 자연의 야성을 잃어가는 동물들을 보며, 이것이 과연 진정한 보호인가 하는 씁쓸한 의문이 들었다.

 

공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산 지대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약 64만 년 전의 대규모 분화로 생긴 칼데라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광대하다. 평온해 보이는 대지 아래에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다. 만약 다시 폭발한다면 지구 전체의 기후까지 단숨에 바꿀 수 있는 초대형 화산이 바로 내 발밑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디디는 발걸음마다 묘한 전율과 경외감이 느껴졌다.

 

공원 깊숙이 들어서자 다른 행성에 온 듯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황량한 대지 위에는 밑동이 하얗게 변한 나무들이 서 있었다. 지열 활동으로 나온 규산 성분이 나무 안으로 스며들어 화석처럼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흰 양말을 신은 듯한 모습 때문에 ‘바비 삭스 트리(Bobby socks trees)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었는데, 앙증맞은 이름과 달리 내게는 뜨거운 대지가 남긴 오래된 상흔처럼 보였다.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Old Faithful geyser)은 대자연의 힘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하늘로 솟구치자, 숨죽여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인간의 기술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독무대였다.

 

그랜드 프리즈매틱 스프링(Grand Prismatic Spring)의 무지갯빛도 잊을 수 없다. 중심부의 깊고 투명한 푸른색에서 노란색, 주황색, 그리고 붉은색으로 번져나가는 모습은 거대한 물감 팔레트를 펼쳐 놓은 듯했다. 물의 온도에 따라 저마다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박테리아들이 만들어 낸 색채라는 설명에 자연의 신비로움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옐로스톤강이 오랜 세월 깎아 만든 그랜드캐년(Grand Canyon of the Yellowstone)에서는 또 다른 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천수와 가스에 산화되어 노란빛을 띤 바위들이 깊은 협곡을 만들고 있었다. 그 빛깔에서 ’옐로스톤‘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웅장한 아티스트 포인트(Artist Point)에 서자 폭포수가 협곡 아래로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우렁찬 물소리를 들으니 가슴 속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맘모스 핫 스프링(Mammoth Hot Springs)에서는 하얀 석회질이 계단식 테라스를 이룬 풍경을 만났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엘크 엄마와 새끼가 한가로이 쉬고 있었다. 벌레를 피하려고 유황 냄새가 자욱한 곳에서 쉰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대 자연 속에서 살아남는 동물의 지혜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150여 년 전, 이 땅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들이 개발 대신 ’보존‘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 이토록 눈부신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 먼저 지켜 다음 세대에 물려주었기에 우리가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지도위에 새롭게 붙인 스마일 스티커 세 개는 단순한 방문 기록이 아니라 자연을 지키기로 선택한 선인들에게 보내는 나의 작은 감사와 경의의 표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