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양심의 무게와 정의의 얼굴

 
가게가 저만치 보이자 아이들은 옷을 마구 흔들며 뛰어갔다. 뭔지는 모르지만 자기들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어떤 섭리였을까. 가게 문 앞에서 옷값을 계산해 준 그 청년과 딱 마주쳤다. 꼬마들이 서로 질세라 설명을 해대자 그는 당황했다. 가게에 취직된 지 며칠 되지 않은 터라 실수한 모양이라며 난처해했다. 내 머리는 또다시 빠르게 돌아갔다. 이 상황이 어쩌면 실직으로 이어질지도 몰라. 나는 얼른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몰고 나왔다.
 
돼지족발 때문에 심란하던 중 문득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생각났다. 우리는 삶에서 행하는 선한 행동이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할 때가 있다. 때로 양심과 배려 사이, 도덕적 책임과 현실적 결과 사이에서 갈등할 때도 있다. 나의 이 고민에 공리주의자 벤담이라면 “네 알량한 양심 운운 때문에 종업원이 해고될 수도 있는데. 그들의 고통은 어쩔 건가?”하고 묻지 않을까. 반면 동기중심주의자 칸트는 단호하게 “물건값은 치르지 않았어. 그들이야 어떻든 너는 양심을 지켜야 해.”하며 다그칠 거다. 샌델은 말했다. ‘정의’라는 것은 추상적인 원칙, 즉 법적이거나 제도적인 문제나 거창한 정치와 철학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맥락과 공동체의 가치나 역사적 정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도덕적 판단이란 결국 ‘공동선(善)을 함께 고민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그는 묻는다. “민희야, 너가 말하는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이니?”

우유부단에 결정장애까지 있는 나는 세 사람의 말이 모두 맞는 것 같아, 오늘도 시커먼 돼지족발을 앞에 두고 양심의 무게와 정의의 얼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느라 괴롭다.

<성민희 소설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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