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 한상신

 

불을 켜니까 발목이 번진다

나는 어깻죽지 툭툭 털며 빗소리를 벗는다

늘 먼 곳에서 검은 마스크를 쓰고 오는 빗소리

신발장을 열고 빗소리 닫고

 

비에 젖은 운동화 뒤축이 어둡다

운동화 끈을 잃고 끈구멍이 사라지고

빗소리 몇 모숨이 실종되고 있다

미리 젖고 있는 어둠

푸른곰팡이 포자같이 번지는 어둠

​

발뒤꿈치를 조금 들어 올리는 빗소리

​

빗소리는 좀처럼 개체수가 줄지 않는다

​

재봉틀 같기도 하고 탁상시계 같기도 하고

연통 같기도 하고 무슨

가재도구 같기도 한 푸른곰팡이들로

빽빽한 오후 여덟 시

​

신발장 안에서 빗소리들이

켤레켤레 깊어지고 있다

신발장 앞에선 외딴 신발 한 짝의

어둠이 또 고요히 번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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