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베이비

 

내가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 있다. PBS라는 교육 방송국에서 매주 금요일에 방송되는 앤틱 로드쇼Antiques Road Show다. 한국의 ‘진품 명품 쇼’와 같은 맥락이다. 도시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가지고 나온 옛날 물건들을 전문가들이 감정해서 진품인지를 가리고, 대강의 가격을 알려 주는 프로그램이다.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다. 자신의 물건은 아니라도 전문가들의 입을 주목하며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듣는다. 감탄사가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의 탄식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긴장감에 저절로 동참하게 된다.

특별히 기억나는 물건들이 있다. 한 백인 여성이 5살 정도 아이의 키만 한 탁자를 들고 나왔다. 지나가던 길에 어느 집 앞에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야드 세일을 구경했단다. 좀 투박해 보이는 모습이 왠지 정이 가는 탁자여서 야드 세일 치고는 좀 비싼 가격인 25불을 지금하고 사 왔다. 현관 옆에 두고 가방이나 열쇠를 두기에 편했지만, 모양이 세련되지 못해 남편과 딸아이에게 군소리를 들었단다.

어느 날 서랍에 무언가가 걸렸는지 열 수가 없었다. 작은 틈으로 손을 넣고 뒤적이는데, 손끝에 무언가가 만져지기에 탁자를 뒤집어 놓고 보니 서랍 안쪽에 누렇게 변한 종이가 붙어 있고, 인두로 지진 것 같은 도장이 찍혀 있더란다.

뉴욕의 고가구 전문 감정가로 유명한 쌍둥이 중 하나인 캐노LEIGH KENO는 그 여인에게 악수를 청하며 이런 명품을 보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 탁자는 180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진 수제품으로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정교하게 나무만으로 연결한 것이란다. 안타깝게 다리의 조개껍데기 모양의 조각이 조금 손상되어 감정가격이 8,000불이지만, 만 불은 넘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여인은 “어떻게 해, 어떻게 해”를 연발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나에게 미안해하겠지.” 그동안 받은 구박을 한 눈 찡긋하는 것으로 갚아 주었다.

1910년도 Paris Cartier 담배케이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30년 전, 작은 마을에서 식당을 하는 한 여인에게 어떤 남루한 손님이 돈이 없다며 내민 물건이란다. 불쌍해 보여 세 번의 저녁 식사를 주었는데, 현 시세로 7,500~15,000불의 값어치가 나간다고 한다. 그 남자는 아주 비싼 식사를 한 셈이다

프로그램이 마치기 전 몇 분 동안 나오는 짤막한 뒷이야기feed back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좋은 물건인 줄 알고 간직하고 있었는데 기대치 이하를 맴도는 가격을 책정받은 사람들이 나온다. 전설적인 야구 선구 베이브 룻의 사인이 담긴 공을 집안의 가보로 남기려 했는데 가짜로 판명 받았다. 오래된 일본 도자기인 줄 알고 유리 상자에 넣어 곱게 보관했는데 흔한 화병이란다. 실망했지만 모두 즐거운 표정들이다. 유명 프로그램에 나온 것만도 좋은 추억거리라나.

골동품은 오래된 것들이다. 그 안에는 태어난 시대의 역사와 흐름을 담고 있다. 바람결에 세월이 스치고 지나가며 남긴 흔적들이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그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오래되었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리라.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골동품으로 귀하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아니면 고물이라는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된다.

우리 집 차고에는 오래되어 색이 누렇게 변한 상자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다. 심지어 거실의 한편에도 검은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상자들이 웅크리고 있어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린다.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도 꺼리게 만든다. 이미 세상에 안 계신 시어머니와 시삼촌, 그리고 타 주에 사는 누나들의 물건이란다. 지저분해 정리하겠다니 못하게 말린다.

“그 안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들이 잠자고 있기에 너 혼자서는 안 돼.” 남편이 말한 밀리언 달러라는 단어에 귀가 번쩍 열리며 한편으로는 섭섭하기까지 했다. 설마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에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서니 그가 나의 양어깨를 다정히 잡았다.

“허섭스레기 안에서 생각지도 않은 보물을 찾아냈을 때 미국인들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고 부르는 거야. 가족들의 숨결이 담긴 물건들이니 추억으로의 여행을 떠나며, 보물섬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하나씩 열어보자.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을 구별해야지. 어머니가 무엇이든 버리지 않고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취미가 있으셨어. 더욱이 지금은 없어진 산타페 레일로드 회사에서 일하면서 모은 수집품 중에 혹시 값나가는 물건이 있을 수도 있어.”

덜렁대는 내 성격상 맡겨놓으면 대충 버릴 것을 알고 멋지게 포장해서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그의 말처럼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 타인에게는 일전의 가치도 없지만, 본인에게는 영원히 간직하고픈 진품이고 명품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의식 속에 얼마나 많은 쓸모없는 생각들이 섞여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있을까. 가치 없는 일과 생각에 얽매어 소중한 것을 놓쳐 버리고 후회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분별의 눈이 부족해 얼마나 많은 좋은 인연들을 흘려보냈을까. 자신 안에 담긴 진품과 명품은 무엇일까. 과연 있기는 한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차고에는 셀 수 없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풀풀 먼지를 털며 그의 추억의 창고로 들어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그들을 깨울 날이 기다려진다. 혹시 숨죽이고 있을 진짜 돈이 되는 물건을 기대하며, 오늘도 진품 명품 쇼를 통해 분별하는 눈을 키운다. 누가 알랴. 나도 그 프로그램에 무언가를 안고 줄을 서서 감정을 기다리고 있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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