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ame01.bmp 네버 엔딩 스토리

 

 

 


그리움의 물결을 타고 추억의 유람선이 기적소리 울리듯 이야기를 쏟아낸다. 7남매가 고만고만하게 자라던 때,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의 여행이다. 여자들이 한방에 누워 “그때 그랬잖아!” “아, 맞아 정말.” 서로의 기억을 더듬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
서울에서 언니 둘과 올케언니 그리고 조카가 다니러 왔다. 각기 생활이 있기에 처음에는 같이 온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 설마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큰언니네 아파트 거실을 꽉 채운 여인들의 물결에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부딪치고 막히고 정신이 없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 모인 이후로 12년 만인가? 편찮으신 엄마께 그리던 얼굴 보여 드리고 맘껏 재롱(?)을 부리자는 것이 이번 단체여행의 목적이다.
오랜만에 누구 엄마에서 벗어나 잊고 지내던 어릴 적 이름으로 불러본다. 종희 언니! 밥 먹어. 종순아! 과일 좀 깎아. 현숙아! 종익이한테 전화해. 부모 그늘에서 세상 근심걱정 모르던 철부지 시절로 돌아간 듯해 정겹기 그지없다. 온 가족을 합치면 15명이니 일개 소대 수준이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자동차가 세 대나 줄줄이 따라가야 한다. 누구 한 사람 빠뜨리고 출발을 해도 모를 정도다. 식사를 하려면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우리가 자랄 때처럼 우왕좌왕 시끌벅적, 그래서 더욱 즐겁다. 내일은 세도나로 2박 3일 여행 갈 예정이다. 자연의 기를 받으러 가잔다. 지금도 아줌마 특유의 기세들이 만만치 않은데.

 

언니들과 한 방에 나란히 누우니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방안 가득한 온기처럼 우리들의 이야기는 서로의 마음을 훈훈하게 보듬어 안아 주었다.

기억나? 아버지가 지금으로 말하면 시의원쯤 되는 선거에 출마했는데 떨어지셨다. 아버지는 재판을 걸어 당당히 부정선거임을 밝혀내고 당선 결정이 나기는 했는데, 5․16혁명이 나면서 아쉽게 무효가 되었다. 어수선한 시국에 맞물려 사업이 침체되고, 선거와 재판비용까지 보태져 빚더미에 올라앉을 위기라 온 가족을 모여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같이 죽을까 아니면 천막 치고 다시 시작할까? 아버지의 비장한 물음에 열 살도 안 된, 예나 지금이나 당찬 큰언니가 길바닥에 나앉는 한이 있어도 온 가족이 같이 살자고 했단다. 절절한 가족애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기억나? 종순이 수학여행 가는 날이었다. 새벽의 어둠 속에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졸음운전 탓인지 인도로 튀어 오른 차에 배웅 나갔던 엄마와 둘째 언니까지 교통사고를 당했다. 나란히 누운 세 명의 환자들 때문에 안방은 병실 아닌 병실로, 의사가 왕진을 오고 다른 가족은 간병을 하느라 바빴었다. 나중에 뺑소니 친 범인이 잡혔는데 단칸방에 어린 것들까지 올망졸망하더란다. 치료비를 받아내기는커녕 아버지가 쌀가마니까지 얹어 준 황당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도 생각났다.
기억나? 동네에서 처음으로 삼층 건물을 올리며 엄마는 무척 행복해 했다. 집 뒤 빈터에 가을걷이를 끝내고 볏단을 여러 덩어리 높다랗게 쌓아 놓았다. 밤에 거지가 추위를 벗어나려 그 틈새에서 불을 지피고 몸을 녹이다 불길이 볏단에 옮겨 붙었다.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며 불길이 우리 집을 덮치려 널름거렸다. 이웃들이 물을 퍼 나르며 소방차 오기를 기다리는데 엄마가 ‘우리 집은 안 돼’라고 울부짖으며 성난 불길로 뛰어 들었다. 마치 자신이 그 중간에 서면 불길이 잦아들거나 막을 수 있을 것처럼. 온 가족이 그런 엄마를 말리며 붙잡느라 혼비백산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기억나? 막내 낳을 때. 드디어 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려나 보다. 어릴 적 내 이름만 돌림자를 따르지 않아 궁금해 했었다. 어른들이  중량교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해서 구석진 곳에서 울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업둥이가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져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큰언니가 진술했다. 엄마가 진통이 온다며 윗동네 사는 친척 아주머니를 불러오라고 했단다. 새벽 보름달 빛을 밟으며 종희, 종구와 지름길을 택해 종종걸음을 쳤다. 평소 낮에도 공동묘지 쪽은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어쩔 수 없어 손을 꼭 잡고 벌벌 떨며 지나갔단다. 길 가운데 나뒹구는 관 뚜껑과 움푹 파헤쳐진 무덤자리에서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솟아오를 것 같았다. 낮에 개구쟁이들이 장난삼아 기다란 잡풀을 엮어 놓은 것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언덕배기에 서있는 키 작은 나무가 귀신같이 보여 앞서자니 겁나고, 뒷자리는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낚아챌 것 같아 그나마 안전한 중간에 끼려고 다투면서 갔었다고 한다. 여름밤이면 어김없이 방송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순풍에 돛단 듯 지나온 시절의 그리움에 흠뻑 젖어 있는데, 종순 언니가 벌떡 일어났다. 조금 전에 머리가 아프다며 약을 먹더니 불편한가 싶어 모든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엉금엉금 침대를 내려와 가방을 열어 노트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적었다. 혼잣말로 “그래 맞아! 체리 농장에 다녀온 경비야.” 라고 외쳤다. 여럿이 오니 일정액의 돈을 걷어 공동경비는 회비에서, 개인적인 것은 각자의 돈으로 해결하기로 했단다. 회비 관리를 그 언니가 맡았다. 중간계산 결과 100불이란 거금이 모자라 혼자 고민이 되어, 모두들 추억을 더듬는 순간에도 한편으로 그 돈의 출처를 좇다가 생각났단다. 종순언니는 돈 계산하느라 흰 머리카락이 더 늘었다고 투정을 한다.
짠순이 회계 때문에 마켓에서 먹고 싶은 과자도 못 샀다고 시비를 거는 종희 언니. 그럴 땐 슬쩍 카트에 던져 넣고 딴청을 부리는 거라며 요령을 알려 주는 올케언니 때문에 큰 웃음이 터졌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오면 당연히 회계 종순언니가 추억의 일장을 장식할 것이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잠이 들었는지 얕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언니들, 꿈속에서 우리가 자랐던 그 삼층집에서 만나자. 코찌질이면 어떻고, 개미다리 무릎 성할 날 없이 넘어졌으면 어떤가. 언니 나팔바지 몰래 입고 나갔다가 껌을 묻혀 온들 어쩔 건데. 아아, 그리운 시간들이여.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세월이 흐른 뒤 같이 이겨냈던 이들과 나누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행복했던 일들은 몇 배로 부풀어 오른다.
오늘도 내일에서 돌아볼 때는 다시 갈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이 되어 버린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된다고 생각하니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내일 떠날 여행지에서 그리고 언니들이 머물 한 달 동안 더욱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 언젠가 배꼽 잡으며 이야기를 나눠야지. 멈추지 않을 우리들의 즐거운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가자.

잠이 스르르 몰려들며 꿈속에서도 이어질 과거로의 여행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