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시아버지를 보면 이탈리아인이라고 생각한다. 외출할 때면 알 카포네를 연상시키는 중절모를 삐딱하게 눌러쓰기 때문일까. 핏줄이 보일 정도의 하얀 피부와 유난히 길고 끝이 휘어진 매부리코도 그렇다. 그분이 젊었을 당시 인종차별이 심해 상점들 앞에 ‘백인전용’이라는 팻말을 달아 놓았단다. 시아버지는 외모 덕분에 남미계이면서도 백인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단다. 춤과 노래에 일가견이 있어 클럽에서 미끄러지듯 스텝을 밟으면 주위의 여자들이 자지러지며 손 한번 잡아 주기를 기다렸다고 본인 스스로 이야기한다.

  집안에서 그분의 별명은 마피아 할아버지다. 그렇게 불리게 된 계기가 있다. 잡기에 능하고 젊어서부터 이탈리아인 친구들과 어울려 경마와 카드게임을 즐겼다. 주말에는 그들처럼 주머니 불룩하게 현찰을 지니고 다녔다. 언제든지 카드게임을 할 수 있게. 하루는 L. A 다운타운의 클럽에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데 영화 대부의 한 장면처럼 F. B. I가 그곳을 급습해서 마피아단을 전격 체포하는 대형사건이 터졌다. TV 뉴스에 줄줄이 수갑에 채워 끌려 나오는 마피아 단원 중에 중절모를 눌러 쓴 그분이 끼어 있어 가족들은 놀랐다. 다행히 법정에서 35불의 벌금형을 받고 경범죄로 풀려나와 십년감수 했지만 가끔 그 일을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들과 어울리며 ‘무늬만 마피아’였다.

  어느 날 마피아의 일원인 시아버지의 친구가 뉴욕에서 다니러 왔다가 공군을 제대하고 집에 와 쉬고 있던 아들 Joe를 만났다.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Joe에게 접근하더란다. 이탈리아인은 이미 주목을 받고 있기에 타 인종으로 중간급 간부를 찾고 있는데 적격이라면서 탐을 냈단다. 월남전의 전투경험과 비행사 자격증도 있고 독일어 능통하니 여러모로 쓸모가 있으리라 판단되었을 것이란다. 깜짝 놀란 시아버니가 “내 아들은 안 되네.” 단호히 거절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런 그분이 올해로 93세이다. 아! 그 옛날이여. 화려한 여성 편력과 댄스 삼매경도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몇 년 전까지 직접 운전하며 다녔던 산타아나 경마장도 힘에 부쳐 못 다닌다. 오른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절단한 후에도 휠체어에 의지한 채로 다니던 카지노도 이제 별개의 세상이 되었다.

  환자용 침대가 그분의 온전한 세상이다. 모든 일이 그 위에서 해결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TV를 켜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몇몇 즐기는 프로그램 이외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존 웨인 영화를 보고 또 본다. 반은 자면서도 용케 끝 장면이 나올 때쯤은 깨어 나를 부른다. “숙! 영화 끝났어. 다른 것으로 바꿔줘.” 볼일이 있어 잠시 밖에 나갈 때도 기다렸다가 새로 영화를 넣어 주고 끝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영화 보는 일이 그분의 유일한 일과이기에 TV 리모컨이 오른손에 들려져 있지 않으면 불안한지 신체 일부처럼 딱 붙어있다.

  시아버지는 금방 더워지고 쉽게 추위를 타 신경 써서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며칠 계속되는 폭염에 에어컨을 온종일 작동시켜서 콧물을 흘렸다. 폐에 물이 차올라 수술을 했었기에 감기가 걸리면 좋지 않아 잠든 사이 내가 리모컨을 훔쳐 보관했다. 아들이 퇴근해 오자 화가 난 음성으로 도움을 청했다. “나 더워서 타 죽을 것 같아. 내 리모컨 찾아줘.”, 결국 왼손에 도로 쥐녀 드렸다.

  침대를 정리하기 위해 잠시 소파로 안아서 옮길 때도 시아버지의 오른손에는 TV, 왼손에는 에어컨 리모컨이 들려져 있다. 가끔 내가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TV 볼륨을 높게 올려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게 만든다. 조금 작게 낮춰 달라고 하면 의기당당하게 “OK. 이 정도면 돼?” 리모컨을 눌러댄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투정일 수도 있고, “아직 너의 부탁을 들어줄 능력은 있어.” 과시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 리모컨을 잘못 작동해서 바로 잡으려 달라고 하면 입안 든 사탕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어린아이같이 거부하다 마지못해 내민다.

  깔끔하던 양반이 씻는 것을 귀찮아해서 3일에 한 번 목욕시키려면 아들 Joe의 공갈협박이 뒤 따른다. “숙이 못하게 하면 내가 씻겨요” 그러면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 어제는 이발을 시키려 숙이발사(?)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보조인 아들 Joe가 의자에 앉히려 했다. 봐 줄 사람도, 외출할 일도 없으니 그만두라고 했다가 아들의 핀잔을 듣고 하는 수 없이 머리를 맡겼다. 그때도 마치 존 웨인이 쌍권총을 차고 말 위에 앉듯 양손에 절친들을 쥐고 있다가 아들에게 압수당했다.

한때 거대한 범죄 단체의 일원들과 어깨를 겨누며 그들의 주머니를 흩어내던 기개도 이제는 시아버지에게서 찾을 수가 없다. 기본적인 신체 활동 즉 먹고 자고 배출하는 일에도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사는 일에 어떤 능동적인 반응도 보일 수 없이 시간에 그냥 얹혀 흘러가지만 아직 자신의 영역 안에서의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나 보다. TV를 켤 때나 채널을 바꿀 때 보면 시아버지의 눈빛은 마치 알 카포네가 권총으로 상대를 저격할 때 슬쩍 흘리는 비장함이 있다. 존 웨인이 악당을 물리치고 말 위에 오르며 짓는 장난기 스며든 미소가 그분의 얼굴에 스친다.

  간단한 그 동작 안에 그분의 하루가 들어 있으므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에 반갑기도 하다. 보일 곳 못 보일 곳 힘없이 다 열어젖힌 몸에 비해 시아버지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 않은가. 어떨 때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곳간 열쇠로 자기 영역이나 세력을 잡으려 기 싸움을 하는 것 같이 느껴져 혼자 웃음을 흘리기도 한다.

  티격태격하며 궂은일마다 않고 시중을 드는 나보다 손안에서 그분의 의중을 꿰뚫고 움직여 주는 리모컨이 더 소중한 존재일 것이기에 질투는 하지 않으련다. 빼앗지 않을 터이니 좋은 두 친구와 함께 편안한 하루하루가 되길 바랄 뿐이다.

마피아 할아버지의 오늘도 두 절친과 함께 열리고 저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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