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것과 과한 것
오늘 아침 뉴스에 한 무리의 시민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자동차에 불을 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경찰이 칼을 소지한 38살의 과테말라 남자를 진압하던 중 용의자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하게 한 것이 과잉진압이라며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의 행동이었다. 인터뷰한 시위대 대변인은 자동차에 불 지른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채, 경찰이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민자를 향해 과잉진압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대변인은 경찰들의 행동은 정당했다면서 단호한 어조로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보니 합리적이라는 미국 사회에도 점점 ‘과’자를 붙일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8년 전 나 역시 ‘적당한 것’과 ‘과한 것’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후회와 회한을 남긴 사건 하나를 떠올렸다.
신문을 펼쳐 들고 여유를 부리던 한가한 4월의 어느 수요일 오전, 처음 보는 중년의 히스패닉계의 남자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18팩 짜리 맥주 상자를 양손에 들고 내 앞을 스쳐갔다. 문 옆의 잡지 진열대 앞에서 잠시 멈칫하다 ‘휙’하고 바람을 일으키며 문을 나섰다. 아차 싶어서 돈 내라고 소리를 쳤다. 그가 뛰기 시작했고 아이들 아버지가 뒤를 쫓았다. 무거운 맥주 상자 덕분에 빨리 달리지 못해 한 골목도 지나지 못해 잡혔다. 두 남자가 상자를 잡아당기며 몸싸움을 하자 구경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나는 흉기라도 소지하고 있다면 위험하니 그냥 보내라고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마침 건너편 경찰서에서 비번인 경찰 에릭이 나오다 소란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 구경꾼들을 헤치며 두 남자를 가게로 안으로 데려왔다.
나는 맥주를 돌려주거나 돈을 내면 보내 주겠다는 적당한 선을 제안했다. 그는 돈은 없는데 맥주는 마셔야겠다며 손잡이가 찢겨 나간 맥주 상자를 옆구리에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어느새 창밖에 빼곡히 모여든 구경꾼들은 가게 안의 상황을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10년 전, 오렌지주스 한 병의 싸움이 결국 L. A.폭동의 불씨가 되었던 기억이 떠올라 망설였다. 하지만 평소에 좀도둑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에 ‘한 번쯤은’ 본보기를 보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신고했다. 막상 수갑을 찬 채 경찰차에 실려 가는 뒷모습을 보니 괜한 오기를 부린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6개월 후, 온 동네를 뒤흔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오후에 경찰 두 명이 근처의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때 용의자가 매세티Machete라는 칼-중남미 원주민들이 밀림에서 길을 내기 위해 나무들을 쳐내는 데 사용하는 둔탁해 보이지만 날이 넓어 위험한-을 뒤에 숨긴 채 식사를 하는 그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마침 화장실에 다녀오던 사복경찰이 그 위기의 순간을 보고 위험하다고 소리를 쳤다. 다급한 외침에 식사 중이던 경찰은 뒤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고함과 동시에 칼은 큰 선을 그리며 치켜든 경찰의 손가락 세 개를 스쳤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피를 본 순간 범인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 사람을 해쳤다는 엄청난 현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복 경찰은 공공장소라 위험하지만, 상황이 급하기에 총을 겨누며 제발 그가 멈추기를 바랐을 터이다. 공기를 가르는 동작을 보고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이 튕겨 나가는 반동으로 손이 흔들렸을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법원과 위원회를 드나들며 힘들고 귀찮은 절차를 밟아야 할 일에 한숨을 몰아쉬었을지도 모른다.
눈 깜빡할 새에 일어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단 몇 초지만 그들에게는 몇 겁의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신속한 대처로 경찰은 잘려져 나간 손가락 세 개를 봉합 수술 중이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범인도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한다.
사건의 범인이 맥주 사건으로 경찰서에 신고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때 그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 순순히 퇴장했다면 서로 두 손을 툭툭 털며 한낮의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가 버티지만 않았어도 그냥 보내 주었을 것이다. 내가 주변을 의식해 경찰을 부르지만 않았어도, 아니 잘 설득해 좋은 모습으로 돌려보냈다면 지금처럼 흉악범으로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과’한 것이 문제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데, 적당한 선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