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가 화장하는 날
우리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의 겉모양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 인식 속에 새겨진 고정관념이 당연한 가치의 기준인 것처럼, 때론 객관적이고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치장을 한 채 그 본성을 밀쳐 내버릴 때가 많다.
로지라는 단골손님이 있다. 양다리를 움직이지 못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말 한마디를 하려면 온 얼굴의 근육이 한참 움직인 후에 첫마디가 나오는데, 그나마 반은 씹혀 잘 알아들을 수가 없고 입에서는 항상 침이 흘러내린다. 손가락은 오그라들고 붙어서 길이가 우리네의 절반이지만 한 손은 사용할 수가 없고 나머지는 부자연스럽지만 그런대로 움직인다. 나는 그녀의 나이를 모른다. 묻지 않을 것이다. 숫자에 얽매어 그녀를 내 위 혹은 아래로 정하기 싫다. 그냥 로지면 된다.
그런 그녀가 화요일 아침이면 곱게 화장을 하고 나타난다. 학교에 가는 날이다. 머리도 예쁘게 단장을 하고 우리 가게에 와서 간식거리를 사 간다. 공부는 뒷전이고 친구들, 특히 남자친구를 만난다는 설렘이 그녀를 서두르게 한다. 이미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며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터득한 나는 로지의 반 토막말도 다 알아듣고 챙겨준다. 그런 나에게 손님들이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신기한 듯 물으면 우리 둘은 씩 웃어준다.
그녀가 화장하고 학교에 가기 전날에 나도 덩달아 바쁘다. 몇 달 전 어느 날, 한가한 틈을 이용해 내가 손톱을 다듬고 있는데 그녀가 들어왔다. 지나치는 말로 ‘너도 해 줄까?’ 하고 그는 물었더니 너무나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그녀의 손을 잡고 나니 난감했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깨끗이 씻지 않아서 손톱 밑에는 온갖 음식 찌꺼기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역겨웠다. 그러나 이미 내뱉은 말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월요일이면 나를 찾아와서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달라는 것이다. 로지는 손톱에 예쁜 칠을 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 자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보이기 싫은 아니 보이기 쉽지 않은 신체 일부를 타인이 정성스레 만져 주는 것이 더 기쁜지도 모른다.
한번은 그녀의 손톱에 남은 칠을 솜으로 지우다가 나도 모르게 슬퍼졌다. 그나마 움직이는 한 손은 칠이 많이 벗겨져 나갔는데 다른 손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마음이 그녀를 친구로 받아들였나보다. 그 후로는 그녀의 손톱단장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예쁘게 칠해진 손톱을 들여다보며 기뻐하는 그녀, 그 칠이 망가질까 봐 움직일 수 있는 한 손을 입가로 올려 ‘호호’ 입바람을 불어넣는 그녀는 우리와 다르다고 단정한 ‘핸디캡’이 아니라 나와 같은 그냥 여자인 것이다. 남자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천생 여자이다.
몇 달 전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읽었다. 한창 발랄하게 피어오르는 청춘에 교통사고로 인한 화상이 그녀의 삶을 변화시켰다.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내용이라 지선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에 책에 나와 있는 그녀의 사진을 ‘사고 전&사고 후’를 나누어 눈에 담아 두고 읽는 중간 중간에 되새김질을 했었다. 몇 번의 고통스러운 수술을 거치면서도 바뀌지 않는 그녀의 외모로 인해 그녀와 가족이 겪었을 정신적 육체적 아픔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다. 머리나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 화상을 입어 보기에 흉해 안쓰럽게 생각하고 동정하며, 이상한 눈으로 힐끔거릴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라는 지선의 말을 그냥 받아들이려 한다. ‘저 형편에 남자친구는 무슨…’ 일축하지 말고 화장한 로지를 보면 예쁘다고, 남자 친구가 좋아하겠다고 말해 주려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누군가가 정한 것인지 모르는 획일적인 시각으로 보는 내가 어쩌면 ‘핸디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로지가 화장을 하고 다녀간 날은 내 마음이 예뻐지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