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는 가을에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스친다.

가을은 언제나 내게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어 준다. 눈물로 쓴 단감 이야기는 내게 수필 문학을 접하게 했듯이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다듬게 한다. 올 가을은 김장 김치처럼 한번 붉게 무르익고 싶다.

 

내가 소녀 시절. 서울에서 가을이 되면 어머니는 늘 김장 걱정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내게 '너 오빠에게 편지 좀 해라.' 하셨다. 나는 그 당시(1970 년대) 미국으로 유학가신 큰 오빠께 편지를 띄웠다. 비행기만 지나가도 나의 이상형인 오빠생각이 난다는 감성과 어머니의 염려 섞인 가정얘기는 오빠와 올케 마음을 움직였다. 한 달 안에 어김없이, 오빠는 공부하며 아르바이트 해서 힘들게 번 100달러를 보내주셨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식구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김장을 준비하셨다. 나는 그때마다 가을 수학여행을 못가고, 엄마의 김장을 돕는 일꾼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 몸에선 늘 김치냄새가 났던 일을 어른이 된 후 여고 동창들을 만났을 때, 나중에야 알았다. 배려 깊은 그 좋은 친구들은 내가 상처받을까봐 차마 말을 못한 것이다. 몇 십 년이 지난 후, 귀국했을 때 친구들의 웃으며 지나가는 듯한 얘기를 들었다. '친구'라는 시 속에서 김치 얘기가... 바로 나였다고.

 

내가 김치의 참 맛을 알게 된 것은 미국으로 이민 온 후였다. 몇 주 김치를 못 먹다가 어느 단체에서 점심 식사 때 먹었던 김장김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내 입맛을 살려주었다. 그 후 배추를 사서 조금씩 담가 먹고 직장에서 필요한 분께 팔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김치와 아주 친해졌다. 김치만 있어도 주부의 반찬걱정은 반으로 준다. 아무리 화려한 잔치 상이라도 김치가 빠지면 다른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가 없다. 이렇게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치가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참고 죽어야 하는지를 김치를 담그면서 배웠다. 배추가 칼에 베이고, 소금에 절여죽고, 시뻘건 양념 밭에 뭍이여 죽고, 김치 병 안에 푹 익도록 숨죽었다가 다시 칼에 베여 입안 절구에서 씹힌다. 그때 비로소 너와 나의 입맛을 살려주는 최고의 건강식이 된다. 그리고 주부의 손에 다시 만들어 져서 살아나는 김치를 보며, 나도 한번 김치처럼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맛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올 가을에는 이왕이면 예쁜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 푹 익어가고 싶다.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도, 성품도 성숙해진다면 사람도 점점 익어간다고 표현하지 않겠나. 기왕이면 나도 맛있게 익은 김치처럼 푹 익어서 누구를 한번 살맛나게 해 보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먼저 불쑥불쑥 올라오는 나의 혈기도, 욕심도, 섭섭한 마음도 참고 죽어야 할 텐데..... 김치처럼 적어도 여섯, 일곱 번을 어떻게 죽어야 할런지 이 가을에 다시 한 번 김치에게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