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연의 숨결

신혜원 / 수필가·재미수필가협 회원
신혜원 / 수필가·재미수필가협 회원

[LA중앙일보] 발행 2020/05/01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20/04/30 19:04

화창한 주말 아침이다. 오랜만에 아파트 정원이 나를 부른다. 요즘 밖에만 나가면 마스크를 하는 것이 습관인데 바람 한 점 없는 따스한 햇살이 마스크를 벗긴다. ‘너도 햇볕에 일광욕을 해라.’ 이왕이면 소독도 되었으면 하고 마스크를 볕이 잘 드는 의자에 걸쳐 놓는다. ‘휴우 바로 이거야, 이제 살 것 같다.’ 나는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뻗고 숨을 들이쉬는데 이번엔 햇살이 따라 들어와 숨통을 활짝 열어준다.

어느새 날아든 새들이 재잘대기 시작한다. 새소리 들은 지가 얼마만인가 싶어 귀가 쫑긋해진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망가진 분수대의 테두리 시멘트만 둥그렇게 남아있다. 장미꽃 나무가 사방으로 널려있다. 봉오리부터 활짝 핀 꽃나무가 입구 주위와 담을 둘러싸고 있는데 유독 향이 짙은 주홍색 장미는 나를 더 머물게 한다. 몇 바퀴를 걸으며 살펴보니 작은 나비들이 꽃에 앉아 소곤대고 큰 호랑나비도 이곳저곳 살피며 꽃에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작은 벌레들도 기어 다니고 파리도 몇 마리 날아다닌다. 모두 정겹고 반갑다. 자연은 바이러스와 전혀 상관없이 예쁜 봄을 바로 이곳에 피우고 있다. 정원 한 가운데에 서서 휴대폰에 저장된 ‘국민체조’를 틀어놓고 구령에 맞추어 동작을 따라한다. 정원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과 빈 돌 의자들이 나의 관객이 된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최대한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 집에 머물러야 한다. 이로 인해 신생아가 있는 둘째 아들과 며느리는 우리에게 제발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4월에 있는 나와 작은 며느리 생일에도 만나지 못하고, 5월 초에 있을 손녀 백일도 취소하겠단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남조차 차단될 줄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것처럼 사태가 점점 심각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기 위해 6피트 간격으로 마켓이나 은행, 약국 등 어디서든지 줄을 선다. 물론 서로의 감염예방을 위해 마스크는 반드시 써야한다. 이미 모든 여행, 공공사무소, 사업체등 단체 모임은 모두 취소다.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문을 닫게 되고 실업률은 증폭되고 외출은 더욱 통제될 것이다.

우리가 자연속의 봄을 한창 누려야 할 시기에도 불구하고 마스크에 기대어 봄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생명을 잃은 수많은 가족들의 슬픔에 비하면,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환자와 돌보는 의료진에 비하면, 직장이나 사업체를 잃고 봄을 느끼지 못한들 그게 무슨 비교가 될 문제인가. 내가 사는 시니어 아파트의 정원을 거니는 동안 맞은편 캘리포니아 병원 앞을 응급차가 벌써 두 차례나 지나갔다.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소리도 종종 들린다. 그럴 때 마다 가슴이 섬뜩해진다. 잠시라도 봄을 누리는 행복조차 사치가 될까봐, 또 더 큰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비록 봄의 기다림과 설렘이 식어지고 사라진다 하더라도 내 안의 봄을 잃고 싶지 않다. 비록 미세한 세균이 우리를 구속할지라도, 생명을 위협하더라도 포기하지는 않겠다. 분명 살아남아 코비나19를 회상하는 봄을 다시 맞이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숨을 쉬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소중한 봄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