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 19 시기의 장례 

 

 최근 몇 달 사이에 지인의 부음을 세 차례나 들었다. 인원 제한으로 가족조차 참석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찾아뵙고 위로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자체가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지인과 친지들의 위로와 사랑을 받아도 아쉬움과 슬픔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COVID 19 비상시기에 돌아가신 분을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얼마나 더 외롭고 상심이 크겠는가.

 

 지난 5월 초에 알지도 못하는 분의 장례에 다녀왔다. 열 명 제한의 가족들과의 입관 예배 한 번으로 이별을 고하는 이색적인 예식은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크리스천의 장례는 하늘의 소망이 있기에 슬퍼하는 유족에겐 친지와 지인 그리고 교우들의 방문으로 위로가 된다. 슬픔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축제 분위기의 은혜로운 장례식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상을 당하신 분의 지인이 우리 교인이고 가족이 한국에 계셔서 오시지 못해 가족이 된 마음으로 남편이 집례하고 나는 조가로 봉사했다. 할리우드 훠리스트 동산에는 의자가 6피트 간격으로 5개씩 두 줄로 놓여 있었다. 모인 가족들은 햇빛 아래 마스크를 쓰고 앉아서 예배를 드리며 슬픔을 달래야 했다.

 

 건강하셨던 고인은 낙상으로 수술하시고 재활을 위해 양로병원에 계시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화장 후 꽃병에 담은 납골이 훠리스트 잔디밭에 매장되기 전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 헌화를 한 사람씩 하게 되었다. 장의사 진행자가 붉은 장미 꽃잎 한줌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꽃병을 담은 흰 박스 안에 꽃잎을 뿌려드렸다. 그 영혼은 이미 떠나가셨지만 속으로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고인이 멋쟁이 여인이셔서 그런지 꽃잎을 뿌리며 생각했다. 여자니까 꽃으로 태어나 꽃잎에 쌓여 꽃처럼 사시다가 꽃처럼 시들어 가시는구나. 참으로 인생은 긴 것 같아도 잠깐 살다 순간에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88년간의 삶은 얼마나 길고도 험하고 헤아릴 수 없는 사연이 많았을까.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못 다한 일 모두 어디에 접어 두었을까. 언젠가는 나에게도 아니 누구에게나 순식간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까.

 

 누구나 언젠가는 삶과 이별을 한다지만 더 사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COVID 19 때문에 준비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젊은 사람은 더 참담하고 가족들은 몇 배 더 충격을 받는다. 뉴욕에서 코로나로 감염된 수많은 시신이 봉지에 싸여 냉동 트럭으로 무인도에 이동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코로나에 감염된 가장인 남편과의 이별도 전화로밖에 할 수 없었던 눈물 어린 부인의 모습도 뉴스로 보지 않았던가.

 

 지금은 조금씩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가고 가고 있는 듯 하지만 언제 또 기승을 부릴지 모르는 일 아닌가. 아예 이참에 코로나바이러스 균들을 곳곳에 화장터로 보내서 영원히 돌아다니지 못하게 꼭꼭 묻어두고 싶다. 사람 대신 이번엔 네 차례라고 한꺼번에 태워 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더 이상 억울한 눈물은 거두게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