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떨어버릴까 / 신혜원
싱싱하고 무성했던 나뭇잎이 노랗고 붉게 옷을 갈아입고는 힘없이 떨어진다. 가을을 영어로 Fall 이라고 쓰는 이유가 너무도 그럴 듯하다. 올 가을이 전처럼 운치 있게 생각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은퇴를 준비해야한다는 무거운 마음인가. 뭔가 붙잡고 싶지만 떨어버려야 하는 것들에 대한 내적 갈등과 번민이 나를 사로잡는다.
직장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단련이 되어 즐겁게 일 하는가 했다. 그러나 더 앞서가는 젊은이들의 싱싱함을 보니 위축되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그동안 나만의 노하우와 자신감으로 주위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일 해왔다. 올해는 그것도 시들해지는 기분이 든다. 내 나이도 단풍처럼 옷을 갈아입고 언젠가는 떨어져야만 할 것 같아서일까. 아니 더 나뭇가지에 꼭 붙어 있고 싶어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이겠지. 떨어지기도 하고 땅 바닥에 굴러 밟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땅 속에서 썩어야 되겠지.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연녹색으로 태어나 잎이 생길 때 까지는……. 그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리라.
은퇴(retire)라는 것이 묵은 타이어를 다시 갈아 끼우는 의미로 보자. 더 잘 달려가기 위해 나를 한번 갈아 끼우는 시기라 생각하면 좀 더 위안이 된다. 그렇다. 은퇴를 앞둔 나는 인생의가을을 맞은 절묘한 시기다. 미리 미리 떨어질 준비를 해보는 것이다. 헤어지기 싫은 관계의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는 떨어져야 한다. 안위하게 지내던 거주지의 환경도 바꾸어야한다. 앞으로 현재보다는 더 좁은 공간에서 살기 위한 준비도 해본다. 그렇게 하기위해 내 주위환경을 좀 더 간소하고 단순하게 만들 것이다. 집 안에 있는 물건부터 최소로 줄이고 없애는 것이 우선이다. 마치 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가지치기를 잘해야 하듯이 여지없이 살림살이와 옷 종류를 쳐 낼 것이다. 사실 해마다 느는 것은 문학 서적들이다. 이것을 내치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남에게 주더라도 내가 읽고 줘야 되는데 다 읽자니 시간이 짧아 음미하며 소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가을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본다. 나를 다시 점검해보고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저 낙엽처럼 쓸쓸하게 떨어져 나가버리는 그런 의미의 가을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가기에만 바빠서 나와 내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다. 이젠 나를 다시 정립하기위해 철저히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누군가와의 관계도 나중에 후회 없도록 하련다. 계절이 바뀌어 다시 오고 가듯이 사람과의 만남도 다시 만남을 위한 잠간의 헤어짐이라 생각한다.
올 가을은 재충전을 위한 준비의 계절로 받아들인다. 옷도 곱고 멋지게 입고 싶다. 지는 해가 더 아름답듯이 언젠가는 내 삶의 하이라잇이 될 준비를 해야겠다. 그래서 정말 내가 은퇴를 하게 될 때는 모두가 아쉬워하며 부러워지게끔 나에게 당당해지고 싶다. 후회나 미련 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 하기위해 휴가를 가는 마음으로 가볍게 떠날 준비를 하는 거다. 이것이 올 가을이 내게 준 진정한 의미의 교훈이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