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윙크는 무엇을 말 하는가

 

   큰아들의 저녁초대를 받았다. 남편의 생일을 맞아서 훌러톤에 있는 전통 설렁탕집에서 식사를 했다. 먹는 일보다 손녀를 보는 일에 온 관심이 쏠려있었다. 돌을 지난 첫 손녀가 남편을 닮아서인지 나보다 할아버지에게 더 끌리는 듯 했다. 며느리는 아기에게 '할아버지 윙크' 하니까 손녀가 윙크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남편은 그 모습에 그만 뿅 간 표정이다. 손녀를 안고 위로 올려주고 함께 손잡고 걷고 ……. 식당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개의치 않고 말이다. 윙크가 뭐길래 사람을 저렇게 기분 좋게 하고 흥분시킬까.

 

며칠 전 직장의 상사 M이 나에게 야릇한 윙크를 했다. 그것도 30대 중반, 키가 크고 핸섬한 유태인 남자다. 내가 일하는 소샬 서비스 사무실에는 나와 바로 위 상사인 한국 남자 소샬 워커가 서로 다른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멋있는 정장을 한 미스터 M 이 출근하자마자 우리 사무실 문 앞에 서더니 “Good Morning!, Hi Esther" 하면서 윙크를 두 번 하는 것이 아닌가? 난 당황해서 내 왼쪽 편에 앉아있는 상사 Mr. L을 쳐다보았다. 그도 그 모습을 본 것이다. 이게 무슨 situation 이란 말인가, 난 기가차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웃으면서 깊은 윙크를 내게 보냈다. M이 자리를 떠난 후 상사 L 에게 물었다.”선생님도 보셨지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지요? 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요.“ 했더니 사모님이 웃었잖아요.“  ”제가요? 전 하도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온 것이었어요. “그럼 요즘 그런 것을 ‘Elder abuse‘ 라고 하는데....” “그럼 제가 농락당한 것이네요.”

 

난 남에게 윙크를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워낙 애교가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남편이 눈웃음치는 것은 여러 번 보았다. 그것이 의미 있는 윔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남편이니까 가볍게 내게 장난치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남자로부터 윙크를 받아본 적도, 기대해본 적도 없었다.

 

요즈음 은퇴시기를 놓고 결정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중이었다. 사실 새 직원이 늘 내 자존심을 건드리고 잘난 척을 하니까 자격지심이 생겨 일에 대한 사기와 의욕이 저하된 것도 이유중 하나다. 작년에 그녀가 새로 들어오던 날부터 내 신경은 곤두서기 시작했다. “저는 병원장 Mlove call을 두 번 받고 Director 로 부임Y입니다.” 로 시작해서 나를 제압하려 들고 마치 나의 보스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내 상사가 엄연히 있는데도 말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참고 지냈다. 영어와 스페니쉬를 하고 젊으니까 고용되었나 생각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얄밉게 굴고 도도한지 대화할 때마다 내 속을 후벼놓는 것 같았다. 학벌이나 경력이 결코 나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도 나의 상사에게 조차 지시를 하며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갈수록 나의 심경은 불편하고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몇 번 상사 L에게 고충을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러 차례 고민하다가 관계직원에게 나의 Grievance (불만이나 고충)을 말로 털어 놓은 적은 있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너무도 불공평하게 당하고 대우받는 일이 억울해서 몇 개월 전에는 Document (문서)로 병원장에게 보낸 적도 있었다아마도 나의 부당한 대우와 억울함을 호소했던 글이 그 분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얼마 전엔 슈퍼바이저 미팅에서 나를 부르고 나의 경력과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이고 가족이니 서로 의사소통을 잘하여, 우리 병원이 Five Star (가장 최고점수)의 목표를 향해 전문가답게 일하자고 이야기 했다. 그 말은 내가 그에게 크리스마스카드에 쓴 내용과 비슷했다. 나도 긍정적적으로 노력하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병원장 M이 제일 먼저 아멘하고 직원이 연이어 아멘한 후에 회의를 마쳤다.

 

그의 윙크는 아마도 나이가 많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리 기분이 나쁠 것도 없고, 희롱당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상대방의 윙크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는 내 몫인 것 같다. 나도 누구를 위해 윙크 한번 해볼까? 거울 앞에 서보며 연습을 해본다. ‘아 이건 아닌데, 아무나 하는 게 아냐. 나의 윙크는 안 어울려, 너무 이상해. 손녀가 봐도 고개를 살래살래 저을 것 같아혼자 중얼거렸다.

 

손녀딸이 할아버지를 반하게 했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누구에게 꼭 필요한, 삶의 활력소가 되는 윙크 한번 해보련다. 좀 더 연습을 해서 누군가를 기분 좋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니 축 쳐져있는 누군가의 어깨에 엔돌핀 역할을 하는 윙크 한번 멋지게 날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