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피어나는 별빛
“어머니, 안녕 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눈을 뜨면 총총걸음으로 달려가는 곳은 올림피아 요양 병원이다. 이곳에 계시는 분들은 곧 나의 부모요,형제자매, 그리고 조부모님 같은 분들이다. “어머니, 오늘은 유난히 아름다우세요. 어쩌면 눈이 이렇게 별처럼 반짝이지요?” “아이고 내가 나이가 몇인데…….” 다소곳이 휠체어에 앉아서 아침을 맞는 은발 어른의 말씀이다. 머리를 손으로 쓸고 옷깃을 여미는 그녀의 얼굴에 수줍은 듯 화색이 피어오른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기쁘고 발걸음은 날개가 달린 듯 가볍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짝을 찾아갈 무렵, 찾은 직장은 소샬 서비스 일이다. 그 일은 대부분 환자와 직원과의 의사소통이나 환자의 간호를 돕기 위함이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필요로 하기에 부를 때마다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며 즐겁게 일한다.
종종 목욕을 하기 싫어하는 어르신이 많다. 외국 간호사가 한국인 노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다독일 수는 없다. 그럴 땐 내가 도와드린다. “어머니, 예쁘게 단장하고 옷 갈아입으면 자녀나 손자가 와서 아주 좋아할 거예요.”라고. 약을 먹지 않으려는 어른께는 약을 왜 먹어야 하는지, 먹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얘기해주며 드시게 한다. 가족들이 얼마나 그들의 건강을 생각 하는지,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라는 것도 인식시켜 드린다. 그래도 완강히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설득이 효과를 볼 때는 마치 해결사가 된 것처럼 뿌듯해오는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외롭거나 우울해 있는 어른들에겐 다정하게 손을 잡아드리거나 칭찬 한마디라도 찾아서 해드린다. 그러면 바로 초롱초롱한 눈빛과 생기 흐르는 얼굴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달라지는 그들이 밝은 모습으로 거처할 곳을 찾아 퇴원하시게 되면 내 마음도 뿌듯해진다.
너무나 연로 하셔서 오랫동안 간호를 받으며 사시게 되면 식구처럼 정이 들게 된다. 심지어 치매 걸리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도 아주 귀여울 때가 많다. “여보 나 어떻게? 어디로 가야해? “ 라고 물으실 때가 있다. 자꾸 듣다보니 어느 날, 나에게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니,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이니? “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미야, ‘이리와! 같이 가자.”할 때는 외로우니 함께 있어달라는 애절한 부르짖음이다. K 시인의 고백처럼 ’삶은 결국 혼자서 극복해 가야하는 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가 끝까지 옆에 남아서 함께 모시고 갈 수는 없다. 다만 주님을 굳게 믿으라고 위로해 드리지만 흡족하게 채워 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연민을 등에 업고 돌아서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현재 삶은 바로 미래의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소망이 없다고 우울해져 가는 노인 분들께 나의 말 한마디와 따뜻한 시선으로 인해 기뻐하고 생기를 되찾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내가 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별을 보듯 대하리라. 내가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그들이 오히려 내게 생기를 주어 더욱 살맛나게 하는지도 모르니까.
몸이 아픈 사람보다 외롭고 슬픈 영혼을 덜보는 일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 짐작됩니다.
외로운 노인분들이 신혜원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많은 위로 받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