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된다면 / 신혜원
‘여보, 고마워, 그동안 행복했어.’
‘엄마, 사랑해, 많이 보고 싶어.’
이렇게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면…….
뜨거운 태양아래 왜 하필이면 내가 먼저 떨어져야 할까? 내가 낙엽이 된다면 얼마나 하늘이 원망스럽고 억울할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을 병상에서 일으켜 세우지 않으시고 먼저 데려가실까? 자꾸 이런 의문과 생각을 깊이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폐암 4기로 여름 낙엽이 되신 둘째 사돈의 장례식을 눈물로 바라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사색하게 된다.
누가 숨 한번 쉬는데 죽을 만큼 힘들어 본 적 있는가?
제발 숨 좀 쉬게 해달라고, 날 좀 살려달라고 외쳐본 적 있는가. ‘왜 하필이면 나에게는 암을 두 번이나 주시고 살려주지 않으십니까?’ 라고 하나님께 원망할 수 있을 텐데.....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하면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분 마음에 순종하는 여름 낙엽이 있다. 아름다운 선행으로 수놓은 그녀의 숨결을 잊지 못해 나의 코와 입을 가린 마스크조차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언젠가는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될 텐데 아직은 아니야 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정말 우리가 필요로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할 사람이 먼저 떠나게 되면 하나님도 참 야속하지 저 악한 자는 왜 빨리 데려 가지 않고 하필이면 이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하며 안타까워한다. 내가 아는 선교사님의 ‘하나님도 지옥에 갈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천국에서 사용하실 깨끗하고 선한 자가 필요 했던가봅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나도 낙엽이 될 텐데 떳떳하게 아멘, 혹은 할렐루야로 대답하며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까? 아마도 두려움에 떨며 ‘제발 조금만 더 살게 해주세요. 할 일이 아주 많은데, 정리 좀 하고 올께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라고 빌게 되지 않을까? 난 오랫동안 숙면에 이르지 못하고 나의 마지막에 대해 깊은 상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고 예측할 수 없으니 매일 매 순간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고 살면 어떨까.
왜 낙엽이 될까? 가을이 오기도 전, 봄도 아니고 겨울은 아직도 저만치 멀리 있는데...... 낙엽은 가을에만 있어야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자연의 순리대로 나무가 겨울을 잘 나기 위해 가을에 잎을 많이 떨군다. 가장 아름답게 무르익어 물들을 때 한창 예쁘다고 칭찬하고 운치 있어 할 때쯤 어느새 떨어지고 만다. 어떤 것은 봄에도, 여름에도 떨어진다.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낙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케 하며 묵상하게 만든다.
어느 날 뜨거운 태양아래 축 처진 나무 밑을 지나가다 여름 낙엽이 발길을 멈추게 해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런 대화를 해보았다.
“너는 왜 벌써 떨어진 거야?‘
“전 많이 아파요. 기운이 없어 엄마 손을 놓쳤거든요. 하지만 좋은 거름이 될거예요.”
“그럼 넌?”
“전 동생들을 위해 저보다 엄마 사랑 더 많이 받고 자라라고 양보했어요.”
“어쩜, 너희는 성숙한 잎이었구나. 희망덩어리다.” 라고 낙엽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다. 낙엽은 봄에 새 잎을 돋기 위해 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낙엽은 성숙해져서 다시 새 잎을 탄생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슬픔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희망으로 때론 연민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너무 일찍 낙엽이 되었어도 그 이유가 다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인간의 생명이 오직 창조주 뜻에 달렸다면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일이거늘 어찌 함부로 그 시기를 우리가 정하며 거론할 수 있으리오. 단 육신의 생명이 주어져 있는 한 언젠가는 낙엽이 될 준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부인을 떠나보낸 장례식에서 간증을 하신 사돈 장로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부인을 살려달라고 부인의 병상을 찾을 때마다 절규하며 얼마나 간절한 기도를 하셨을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이를 통해 보여 달라고 애걸했건만,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은 항상 다른 것일까? 하지만 마지막 세상을 하직할 때 내 영혼이 천국으로 인도되는 것을 보여주신다면 ‘할렐루야’로 대답하라고 부인의 귀에 대고 부탁을 하시고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환자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지막 산소 호흡기를 뗀 후 부인에게 물어보셨다고 한다. 천사가 당신을 데리러 왔느냐? 천사가 보이면 대답해보라고..... 잠시 후에 호흡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부인이 ‘할렐루야’를 크게 외쳐서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한 번 더 물으니 기운이 다 해 고개를 끄덕인 후 낙엽이 되신 것이다.
나무 가지에 붙어 있는 한 잎이 제 구실을 다 하다가 낙엽이 될 때 순조롭게 거름이 되듯이 나도 언젠가는 낙엽이 될 테니까 그때까지는 충실한 잎의 역할을 다 하고 싶다. 윤기 흐르는 잎은 아니더라도 뜨거운 더위에도 잘 견디고 얕은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나뭇가지에 잘 붙어있어서 적어도 타인의 그늘 정도는 되어주고 싶다. 적어도 나의 마지막이 올 때 후회는 하지말자. 하루하루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노라고, 참으로 행복하고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부끄럼 없는 감사로 화답하며 천사의 보호아래 나의 영혼을 하늘에 맡기고 싶기 때문이다.
낙엽을 통해 삶을 비유하셨네요.
거름이 되어 다음의 새생명을 잉태하는 자연의 순리.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