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너무 무서워요’ / 신혜원

 

오래전, 벌써 30년 전 아침에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의 교인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 사모님, 우리 너무 무서워요. 밖에서 총소리가 나고요, 안에서는 우리 무서워 모두 떨고 있어요. 여기는 베이스라인 수왑밋 이에요. 빨리 오셔서 기도해 주세요.” 여자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여성도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녀가 평소에 비즈니스 주 7일 일을 하니까 교회에 출석은 거의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과 우리 애들이 같은 학교 학생이고 같은 아파트 주민이기도 해서 우리와는 안면이 있었다. 얼마나 다급하고 불안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를 찾았을까. 다급할 때 하나님을 찾는 심정으로 목사님의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 부부는 부랴부랴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도착하니 몰 입구와 주차장에 타인 종들이 웅성웅성하며 모여 있었고, 돌을 던지기도 했다. 경비를 보는 분들은 못 들어가게 막으며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건물 옥상에는 장총을 멘 남자들이 왔다 갔다 하며 건물을 지키느라 살피고 있었다. 마치 전쟁을 하는듯한 살벌하고 긴박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경비에게 신분을 밝히고 사정을 얘기하니 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해 주었다. 큰 건물 안에는 다양한 점포들이 있었다. 주로 한국인들이 주인이었으며 남녀 옷가게, 금은방, 미용 구 점, 운동화, 장난감, 어린이 옷가게, 99센터, 매점 등등 이었다. 우리는 그 점포들을 일일이 찾아가 한분씩 이야기를 들어주며 간절히 기도드릴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서려 있는 삶의 아픔을 들어주며 위로를 해드렸다. 손을 잡고 기도와 격려를 할 때 불안과 근심의 모습이 사라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얼굴이 환하게 펴지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우리도 함께 감사와 감동을 느꼈다. 사실 그런 일로 심방 시간이 길어진 후 교통체증으로 우리 자녀들의 픽업시간을 놓치기가 일수였다. 우리 애들보다 위기에 처한 교인이 늘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한결같이 어머니날 대목을 보기 위해 물건을 잔뜩 사들이거나 외상으로 들여놓고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해 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변을 맞이하니 경제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4.29 엘에이 폭동을 계기로 1시간가량 동쪽에 떨어져 위치한 샌버나디노 카우니까지 아니 전국적으로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객은 주로 아프리칸 어메리칸과 히스패닉 인종이 많았다. 사실 그들이 좋은 고객이 되어줌으로 인해 한인 사업주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드니 킹 사건으로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가 엉뚱하게 한인 상업인들에게 화살이 가며 곳곳에서 방화, 약탈, 상점파괴 등 심하게 피해를 당하고 있어서 상점 주인들은 밤잠을 못 자며 교대로 상점을 지켜야 했다.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 재물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다해 사업에 투자하며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때 눈으로 확실하게 보았다. 그래서 함께 그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사는 지역엔 4.29 폭동이 엘에이보다는 심하지 않은 편이었고 직접적인 인명피해는 없이 끝나서 참 다행이었다.

 

미국에 이민 오신 분들이 사업을 생명과 같이 지켜내야 하는 그 과정을 보며 한편 우리는 가진 물질이 하나도 없음에 또다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진 것으로 인해 잃어버릴 염려나 공포도 없음에 교인들에겐 오히려 미안한 마음마저 들기도 했다. 우리가 4.29 폭동의 여파를 겪는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더욱 감사를 드렸던 기억이 엊그제처럼 떠올려진다.

 

4.29 폭동의 여파로 술렁이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게 된 후 그 일을 계기로 우리 한인 사회에 큰 깨달음이 된 것이 여러 가지 있다.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소수민족이라고 약자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생긴 것이다. 우리의 1.5세와 2세들이 미국 사회에 전문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실력을 쌓고 힘을 길러나가야 한다는 의지와 의식의 변화이다. 정치, 문화, 경제, 사회, 교육 분야 등 다양한 면에서 우수함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더 노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인들 힘을 합하며 앞장서서 본을 보이며 일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4.29 폭동에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강하게 대처하는 힘을 기르게 된 점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렇게 한인들만을 표적으로 한 큰 폭동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