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맛과 사람 / 신혜원

 

 

순수한 맛과 사람 / 신혜원

 

난 뭐든지 섞는 음식은 딱 싫어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가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동안 삼식을 해대느라 짜증이 난데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그만 감정이 폭발해버렸다.

 

섞지 않고 되는 음식이 어디 있어? 당신과 나도 섞이지 않았어? 그래도 우리가 섞이니까 두 아이까지 낳고 지금까지 잘 살았잖아, 그럼 결혼은 잘한 거지? 당신 순수 좋아하는데 그럼 애당초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해.’

 

그래서 난 신부가 되려고 했었어.’

 

난 수녀가 되려고 했었지.’

 

그런데 순수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천천히 식사한다. 난 변명 아닌 궤변을 논하며 대들어본다.

 

아침 식사로 오트밀을 전날 남은 국에다 끓이거나 갖은 야채를 넣고 끓여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은 꿀꿀이 죽 같다며 억지로 먹는 것 같다. 뭐든지 단순하고 순수한 전통 맛을 찾는다. 이것저것 섞는 음식을 갈수록 싫어한다. 오늘 아침에도 순수한 음식 맛이 없다고 한마디 들었다. 남편의 취향은 알지만 내가 까먹기도 하고 남은 음식 재료를 먼저 없애야 하니까 난 자꾸 혼합 식사를 내놓기 때문이다.

 

요즘 나름대로 남편 식성에 맞추려고 애를 쓰는데 그의 입은 갈수록 까다롭다. 입이 쓰다고 했다가, 나이가 드는 이유인지 입맛이 없다고 하다가 또 배가 아프다고 한다. 원래 위장 계통이 예민하고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난 아무렇지 않게 잘 먹는데 그는 탈이 나기도 한다. 그러니 음식에 관해 관심을 갖고 바짝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원래 내가 요리는 잘 못했지만, 젊었을 때는 남편이 그런대로 맞춰가며 봐주더니 요즈음은 그게 통하지 않으니 사람이 달라진 것일까. 혹시 나에 대한 순수했던 마음마저 탁해져 간 것은 아닌지?

 

어떻게 하면 가장 순수한 맛을 낼 수 있을까? 한 가지 재료만으로 그 음식의 특성을 잘 들어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섞지 않고 되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조미료는 고사하고 소금이라도 섞어야 맛을 내지 않는가. 그래서 난 자꾸 섞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혹 내가 순수치 못해서 순수한 음식 맛을 못 내는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해본다.

 

과연 순수라는 말이 물질이나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지조차 아리송해진다. 특히 순수한 맛을 내기는 더 쉽지 않다. 백 퍼센트 순수는 아니어도 많이 섞지 않고 단순한 맛으로 재료의 특성을 살려 그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담백한 맛을 말하는 것 같다. 순수한 사람 역시 불순한 생각이나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하고 정직하면 순수에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왜 느끼하다고 표현할까? 사람에게도 느끼한 맛과 순수한 맛이 느껴지니까 나온 표현 아닐까. 겉모습에서 보기만 해도 느글느글 역겹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사실 남편에게서 느끼한 기분이 들었다면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40년 이상 살아왔겠나. 서로 지내다 보면 그 속마음까지 읽게 되어 순수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게 되니 자연스레 사람에게도 맛으로 표하는 것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겉과 속이 때가 타기 쉽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순수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도 없고 마음이 곱고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한다면 순수하다고 할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랑도 순수할 때 가장 아름답고 기억에 남지 않던가. 생각해보니 순수라는 단어 자체가 참 고귀한 단어인 것 같다. 우리가 함부로 순수를 논하기엔 갈수록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순수한 사람을 좋아하고, 순수해지고 싶고, 그래서 점점 순수한 맛도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 남편은 더 이상 음식 맛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졌다. 한바탕 나와 순수논쟁이 있고 난 뒤 본인부터 순수해지고 있는 걸까. 나도 순수한 맛을 내기 위해 뭐든지 아무거나 섞는 일은 자제하고 있으니 역시 순수한 맛도 내고, 순수한 사람도 되고 싶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