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아 외출하기 좋은 날이다. '어머니 날'이라고 큰딸이 내게 꽃구경을 시켜 준다며 가족을 차에 태워 헌팅턴 라이브러리로 향한다. 

 

딸 둘이 앞에 나란히 앉고 남편과 나는 뒷자석에 앉았다. 오랜만에 하릴 없이 하늘과 구름과 산,  지나치는 건물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즐긴다.  배역의 교체이다. 결혼하여 가정을 일구며 살아온 지난 30여 년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고 이제 두 소녀는 성숙한 여인이 되고 젊은 부부는 노인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패서디나 근처를 지나는데 어느 젊은 남미계 여성이 신호등 근처 길목에서 '마더스 데이 스페샬'꽃을 팔고 있다. 그녀 뒤에는 그녀의 딸로 보이는 소녀가 혼자 꽃바구니를 돌보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붉은 신호등에서 차를 멈추고 있던 나의 큰딸이 갑자기 차창을 열더니 지폐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가 곧 차 안으로 꽃다발을 들여 내미려하자 딸이 괜찮다며 정중하게 사양한다. 꽃을 든 그녀가 어리둥절해서 차 안을 들여다보다  잠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차를 다시 몰며 딸이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난 괜찮다고 했다. 사실 내게 그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은 참으로 뜻깊은 어머니 날 선물이 되고 말았다. 딸의 따뜻한 마음을 목격하고 나는 그 아이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내가 떠난 후에도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온기를 보탤 수 있는 그 누군가를 남겨 두고 가게 되리라고.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오늘도 우아한 자태로 우리 가족을 반겨준다.  내 젊은 날  꽃다운 친구들과 여길 찾아와 함께 즐거워하던 추억을 회고하며, 딸들이 준비해온 정성 어린 샌드위치와  스낵을 먹은 후 아름드리나무와 황홀한 꽃밭 사이를 거닐며 행복한 '어머니날'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