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보니 오늘이 벌써 5월의 마지막 날이다.  창밖의 보랏빛 자카란다가  몽상적으로 피어나는 매년 5월이 다가오면  절로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5월은 왠지 환상적이며 화사하고 풍성한 느낌이 든다.

 

내게 있어 5월은 각별한 달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고 어머니 날, 어린이날,  멕시칸 독립 기념일인 싱꼬 데 마요,  그리고 참전 용사의 명복을 비는 미국  공휴일 메모리얼 데이까지 있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매년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멕시칸 스타일 생일 파티를 즐겼지만, 그 후 아직도 재택 근무를 하는 실정이라 그들이 손수 만들어준 타코와  특히 마음 좋은 동료, 빅터의 인기 만점 '피코 데 가요'의 매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본지도 벌써 2년이 넘었나 보다.

 

대신 올해는 집에서 피크닉 파티를 했다. 원래 계획은 가까운 공원에서 하이킹도 하고 피크닉을 하기로 했지만 바람이 불고 날씨가 흐려서 대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어머니날 겸 생일 파티를 하였다. 

 

마침 딸들이 대나무로 만든 피크닉 바스켓을 선물로 주어서 열어보니 와인 잔, 접시, 포크, 나이프 샡과 풀밭에서 깔고 앉을 넉넉한 담요까지 들어 있어 멋진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다.  티 타임을 좋아하는 나를 위하여 샀다는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펠로우 드립 포트는 최고의 상품을 선물하고픈 그네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미국 화가 메리 카사트의 화첩도 곁들여 선물 받았는데 주로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따뜻하게 표현된 그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나의 친언니가 보내준 큼직한  생일 축하 꽃바구니가 실내를 환하게 밝혀주었고,  두 딸이 준비한  샤퀴테리는 너무 예뻐 건드리기가 망설여질 정도였다.  여러 가지 살라미와  프로슈토, 고운 빛깔로 멋을 낸 과일과 견과류, 각종 치즈와 잼,  크래커가 소담스레 담겨있어 구미를 당겼다. 

 

오랜만에 거실의 대형 스크린을 켜고 가족과 함께 모두 편한 자세로 둘러앉아 영화 두 편을 감상했다.  '맘마 미아!' 라는  메릴 스트립 주연에 아바의 음악이 나오는 뮤지컬 영화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일본 만화 영화도 보며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를 위하여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 딸들이 고맙고 기특했다. 

 

꼽아보니 참 많은 세월을 살았다. 정신없이 매일을 살다 보니 벌써 환갑이 넘었다. 지나간 날들은 돌이켜 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렇게 나와 주위 사람들이 모두 건재한 사실이 고맙기만 하다. 이제 남은 인생은 덤으로 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가길 염원한다. 이 경이로운 세상, 아직도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고 생생하고 깊은 인식으로 모두 함께 보다 멋진 세상을 이루어 나가고 싶다. 

 

그 어느 달보다 충만하게 만끽하며 보내고 싶었던 5월이었는데 어느새 다 가고 한 시간을 남겨 놓고 있다. 코로나 이후로 나는 아직도 두문불출하고 있어 무척 단조로운 삶이지만,  나의 마음은  비교적 평화롭고 만족한 편인 것 같다.  이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욕망이 줄어서일까?

 

요즘 나의 친구는 내가 매일 물을 주며 돌보는 뒤뜰의 화초들과 '유튜브'라 할 수 있겠다.  어제도 밤늦게까지 칸 영화제와 박찬욱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리고 송강호 배우의 영화와 그들의 인터뷰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예술혼과 생에 대한 집요한 탐구력, 그리고 넓게 열려있는 인류애는  건조하고 단순한 나의 일상을 예술에 대한  노스탈쟈에 촉촉하게 젖게 해주는 것 같다. 

 

내가 곧잘 잊어버리고 살던 '예술'은 이렇게 소중하고 고귀하다. 

그래서 나는,  5월의 마지막 밤에, 너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의 모든 '예술'을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