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스님께서
"생각이 일어날 때 죄가 일어난다."라고 하셨다.
학인이 여쭙기를
"생각이 일어날 때 죄가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까
스님께서 "죄가 수미산처럼 크다." 고 하셨다.
생각이 일어날 때 죄가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죄가 없어야 하는데 어째서 운문 스님께서 죄가 수미산처럼 크다고 하셨나?
수 년전 우연한 호기심으로 화두 공부를 시작해본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무언가 멋이 있는 것 같고 문학 공부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시작했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옛말로 되어있는 데다 사투리가 섞인 문장 자체가 나처럼 고전과 역사에 별 조예가 없는 현대인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몇 가지 문학적 가치가 있는 빛나는 화두를 배우게 된 기회가 되기도 한 건 사실이다.
수미산 공안은 시작하여 맨 처음 받은 화두이다. 이 공안은 모든 화두의 가장 기본이며 다른 화두도 이것에 근본을 두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매일 바쁜 일상을 살며 화두 공부를 계속할 수 없어 중단한 후, 화두에 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수년이 지난 오늘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다 갑자기 마음 속으로 계속 이 화두를 되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타자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고요히 수미산 공안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달콤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연이어 배웠던 다른 화두에 대한 기억들도 연달아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 조금은 화두의 묘미가 이해가 되는 듯도 하다.
그동안 나는 살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 순수하지 않았으며 고정관념과 편견, 선입견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았다. 무엇보다 사람들에 대한 그릇된 판단이 많았던 것 같아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죄는 수미산처럼 크다.
내가 생각을 놓아버린 적이 언제 였던가? 가끔 산에 오를 때, 맨땅에 발을 디딜 때, 들꽃들과 대화할 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심호흡을 할 때, 요가할 때, 아름다운 새벽하늘을 바라볼 때, 석양 무렵 - 이러한 시간 나는 생각을 멈추고 고요한 상태가 된다.
나를 잊어 에고가 사라진 상태. 모든 욕망과 깨달음에 대한 집착까지 온전히 내려놓고 그저 경이로운 세상에 대한 감탄과 조물주와 사람들에 대한 경건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과 완전한 조화를 이룰 때 나는 참으로 모든 것과 함께 존재 하리라, 영원히!
동서고금을 털어 진리는 여전히 통한다.
무념무상, 무아의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