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양직픔 9-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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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숙이 남편 / 김영교

 

 

지난주 미장원에서였다. 한 나이 든 남자가 미장원에 머리 자르러 왔는데 글쎄, 친구 숙이 남편이었다. 참으로 오랫만이었다. 반가워서 조용히 안부를 나누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산 동네에서 토랜스로 내가 이사하는 통에 소식이 끊켜 그 남편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깐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친구 숙이가 죽은 지가 말이다. 손아래 올케가 씽씽 모는 차에 운전석 옆자리를 올케 동생에게 내주고 자신은 뒷자리에 앉았다. 자동차 사고 시 에어백 도움을 받지 못해 숙이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신문에도 여자들의 신중하지 못한 운전을 크게 보도했었다.

 

울음 바다였다. 그렇게 급작스런 장례식을 치룬 다음, 아주 한참을 우리 친구들은 숙이를 품고 살았다. 손아래 올케는 자신의 운전사고로 손위 시누이를 죽였다고 외부 단절 상태에서 스스로를 감옥에 가뒀다. 죄책감과 죄의식 때문에 정신, 심리치료를 쭉 받으며 급작스럽게 집안이 울적해져 갔다. 도요다 결함이라고 변호사끼리 줄 당기기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 전에 해결이 나긴 난 모양이었다. 그 해결이 죽은 친구를 되살릴 수야 없겠지만 착한 숙이 남편이 수 년만에 그래도 뭔가 위로받은 것 같아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까지 딸은 미혼, 성장 호르몬 장애로 딸은 얼굴이 보름달 (Moon Face)이다. 잘 나가던 변호사 아들은 백인 불론드와 결혼, 딸 아들 낳고 스카웃 받아 영국에서 잘 살고 있었다. 이혼 후 지금은 아버지 집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지가 6개월이 넘었다고 했다. 미국 적응이 힘드는지 아버지 눈치를 살핀다 했다. 혹시 아들이 아버지 외로움을 살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평온한 베드룸 네 개의 아담한 단층집은 홀아비, 이혼남, 노처녀가 주부 없이 살고 있다. 쓸쓸함을 아는 듯 잔디는 더 푸르게, 꽃은 더 곱게 피어 화초들도 최선을 다해 위로에 일조하는 것 같았다. 친구 남편은 운동 삼아 동네를 새벽 산책하는 게 일과 시작이고 걸을 때면 옆에 숙이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커피 시간을 함께했다. 오늘은 스케줄이 없는 목요일, 걸려온 전화에 응했다. 그는 대부분 영어로 대화했다. 그 나이에 영어가 더 편한 그는 오히려 한국말이 어눌했다. 일찍 유학 온 그는 엔지니어링 전공, 엔지니어로 좋은 직장에 골프치며 단란한 삶을 살았다. 숙이도 영어권. 일본에 유학한 적이 있어 일본어도 유창했다. 어머니는 몇 명 안되는 여성 국회의원, 그 옛날 미국 유학 온 인테리 여성이었다. 숙이 취미는 꽃이었다. 꿈은 화원경영이었다. 곱고 아름다운 꽃으로 특히 결혼 식장을 고급스러운 자신의 디자인으로만 꾸미고 싶어 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택 앞뒤 정원 만발한 각가지 꽃은 숙이 꽃사랑 작품이었다.

 

숙이 남편은 외롭다 했다. 숙이가 남긴 빈자리에 늘 쓸쓸한 바람이 분다 했다. 입맛이 없어 먹고 싶은 음식이 하나도 없지만 반찬 코너가 때론 구미를 땡긴다 했다. 골프는 그만두었다는 데도 여전히 자세가 곧고 보행이 반듯했다. 미국 교회 St, Mark’s Presbyterian Church에 주일마다 출석, 예배드리러 외출, 그렇게 운전을 하며 매일 일과가 단순해도 자유로운 편이라 했다. 10분 거리에 반찬가게며 투고식당이 많아 싱글이 살아가기는 편하다 했다. 보상금이 무엇인가, 숙이만 살아있다면 하고 친구 남편은 수천 번 되뇌이었을 게다. 보상금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야 되었겠지만 외로움보다 더 기막히게 무서운 짐승이 세상에 또 있을까? 산목숨, 따라 죽을 수도 없고 말이다.

 

그렇게 친구 숙이는 너무 황당하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숙이 남편은 얼마나 더 많은 나날을 외롬이란 짐승과 싸워내야 할까? 외로움이야 말로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자연스럽게 한 날 한시에 부부가 같이 세상을 하직할 수 없을 진데 ‘있을 때 잘해’ 캐치프레이즈가 절대 공감이 간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코앞의 당면 문제 같다. 돌아와 나는 나를 돌아보며 한없이 숙이를 그리워 했다. 아울러 남은 가족과 숙이 남편의 건강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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