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과 호랑이 / 김영교

 

호랑이가 온다 해도 그치지 않던 어린 애가 곶감 온다는 말에  울음 뚝 - 그쳤다. 엿듣던 호랑이 생각에 나보다 더 무서운 짐승이 있나 보다 하고 줄행낭을 쳤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곶감의 전신은 감이다.  '감이 붉어지면 의사는 점점 창백해 진다' 란 옛 말도 있다.  붉게 익은 감이란 과일 안에는 온갖 영양분이 내포 돼 있기  때문이다. 감을 먹게 되면 잔병이 없어져 의사는 그때부터 환자가 오지 않아 얼굴이 하얗게 창백 해진다는 얘기다. 그 만큼 감의 높은 약리작용을 피력한 것이다. 감은 주성분인 포도당과 과당 외에도 비타민의 모체인 베타 카로틴이 아주 풍부하다.  지혈효과를 위시해 여러 면에서 효험이 뛰어나기 때문에 감철에는 잔병이 없어진다.  의사의 안색이 창백해질 법도 하다.    

 

무화과 열매나 포도나무는 성서에 자주 나온다.  성서에는 빠져있지만 더 기독교적 과일이야 말로 바로 감나무의 감이다. 왜 감이 기독교 적인 과일일까? 감나무는 나사렛의 청년 예수처럼 완전히 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생 걸로 먹고, 말려서 먹고, 익혀서 먹는다. 바로 단감이, 곶감이, 또 홍시의 단계가 그렇다. 요새는 감 장아찌로도 먹는다. 어느 과일이 이런 재롱을 피울까 싶다. 

 

새 순 돋는 잎은 차를 끊여 마시고, 감 꽃은 한방 약제로,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부엌에서 쓰는 감나무 도마는 으뜸으로 친다. 장롱을 만드는 목재로도 쓰이고 또 즙을 내서 천에 물감을 들이는 염색원료로도 쓰인다.  단풍이 들면 먹이 잘 묻어 종이 대용으로 연서나 시를 쓰는 시엽지가 되기도, 그야말로 완전 희생을 실천하는 나무가 아닌가.   

 

더 기막힌 비밀은 아주 맛있는 감을 먹고 그 씨앗을 잘 간수하여 감씨를 심어도 그 감나무는 안 나온다는 것이다. 싹이 터서 나오는 것은 도토리만큼 작고 떫은 고욤나무이다. 이때 감나무에 접목해야만 감이 열리는 진짜 감나무가 된다. 감 씨를 심어 고욤나무가 나와 3-4년쯤 되면 그 줄기를 대각선으로 째고 기존의 감나무 가지에 접을 붙이는 것인데 완전히 접합되어야, 인내와 기다림 속에서 새 생명인 <감>의 발아가 시작된다.  거기엔 생가지를 찢는 아픔이 있고 본 가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떠남의 슬픔도 있다. 그것이 <감>이란 새로운 생명체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자기부인(自己否認)의 처절한 떠남 없이는 인간의 구원의 도(道)가 없다는 진리가 숨어 있다. 예수와 접 부쳐야 부활이란 나무에 영생의 열매로 맺히는 유일한 구원 법칙이 여기서 명백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것이 용서받은 죄인을 위한 바로 복음의 신비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담백하고 순한 감 잎 차를 가까이 두었다. 우주를 담고 있는 의미의 감 잎 차 한잔, 기울려 마실 때 내 안의 마른 골짜기마다 물기 돌아,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걸러지고  가슴이 뚫리는 듯했다.   이토록 버릴 것 하나 없이 인간에게 한없이 주기만 하는 감나무,  힘이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수이듯 말이다. 

 

감 농사가 풍작이면 덩실덩실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와 민족의식은 예수를 심기에 가장 적합한 마음 밭이지 싶다. 감은 분명 순교자의 사명을 띄고 인간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사도적 과일임에 틀림이 없다.  선비 같은 감을 들어 십자가의 도(道)를 전파한 역사적 의미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된 축복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인생의 가을 철, 감을 통해 예수를 경험하는 삶, 늘 열려 있는 도서실 같아서  단디 단 곶감의 진미,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또 어디 있을까! 

 

줄행낭을 친 문밖의 호랑이가 이 밤도 궁금해  잠 못이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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