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 과외공부를 하다 - 중앙일보 12-24-2020
세상에는 유명한 3대 사과가 있다. 첫째가 아담의 사과(Adam's Apple), 둘째는 뉴톤의 사과(Newton's Apple), 셋째가 스티브 잡스의 사과(Steve Job's Apple)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사과 시리즈에 우리 집 후지 사과나무를 보태어 4대 사과 시리즈를 만들어 본다.
새로 이사 왔을 때다. 이 집 뒤뜰에 기념수로 사과나무 한 그루 심었다. 하루 종일 머물다 가는 햇빛이 드디어 12개나 사과 알을 품었다. 가지 무게를 작대기로 고여 주고 땅 깊이 생선 뼈를 묻어 주며 하루가 다르게 익어 가는 사과를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눈 여겨 보아왔다. 겨울을 견디고 어두운 밤을 통과한 사과라야 달다고 한다. 투병의 겨울을 지나온 나는 완쾌를 향해 익기를 열망하는 사람 사과 한 톨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이제 사과나무는 의미 있는 삶의 창이 되어주고 있다. 눈짓으로 대화도 나누며 아침저녁 하루에도 여러 번 들낙인다. 필요할 때마다 보살펴주다 보니 우린 좋은 친구가 되었다. 오히려 사과나무는 일찍 깨는 농부의 과수가 되어 나를 키우고 있다. 내가 심은 것은 가능성이었고 건강에의 꿈이었다. 함께 잘 자라자고 약속도 주고받았다.
첫 수확 12개 사과알을 나는 계수하고 있었다. 베이 윈도창틀 앞에서 사과나무를 내다보니 8개 밖에 없다. 어! 이상하다. 이틀 전에도 세 봤는데... 오늘 또 세어 봐도 8개, 마찬가지다. 마침 정원사 황장로가 어제 다녀간 날이라 같이 일하는 종업원이 따 먹었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처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하는 이 주부를 위해 사과는 12개 고스란히 나무에 붙어 있어야 했다. 속이 언잔았다. 4개나 따 먹다니...뒤뜰로 들어오는 옆 철문 열쇠는 정원사만 가지고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그날 저녁 전화를 걸었다. 자기 종업원은 남의 과일에 손대는 일이 없다는 황장로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일꾼들 단속 잘 시킬 것을 당부하는 내 할 말만 일렀다.
어떤 바보라도 사과 속의 씨는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러나 씨 속의 사과 수는 하늘만이 알고 있다. 사과를 심고 그리고 사과씨를 헤아리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나는 12개나 되는 사과 수는 잘 세고 사과나무를 잘 키운다는 자부심에 들떠 어리석게도 없어진 4개에 나는 불평했고 남아있는 8개를 그나마 감사하지 않았다. 그 후 사과 알이 자꾸 줄어들었다. 7개, 드디어 5개가 남겨지자 그중 잘 익은 것 2개를 따서 어머니 몫으로 간수하였다. 나무에는 아직도 붉은 홍조를 머금은 사과가 3개나 달려있었기에 황장로에게 또 전화 걸지는 않았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큰길 건너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에서 사온 채소를 씻느라 베이윈도 창틀 앞에서 밖을 내다보며 싱크대에 서 있었다. 햇빛에 뒤뜰 정원수들은 반들 반들, 바람은 파란 이파리들을 간질이는 평화스러운 주말 오전이었다. 내 눈은 담벼락에 쉬고 있는 예쁜 다람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타잔처럼 휙 사과나무에 건너와 사과를 따서 담벼락 위로 되돌아가 눈알을 있는 대로 동그랗게 뜨고 꽁지를 치켜세우고 사과를 돌려가면서 야금야금 먹는 것이 아닌가! 범죄현장을 목격, 가슴이 쿵당쿵당 뛰었다. 엄청난 사건을 포착한 것이다. 번개 생각은 카메라에 그 모습을 급히 잡아 두는 것이었다. 이 근처에 생태계보존 늪지(Marsh)가 가로수길 끝에 있어 시걸, 펠라킨, 오리, 오파슴, 라쿤, 다람쥐등 야생군이 서식하는 터라 가끔 불시착한 오리쌍을 열어놓은 우리집 차고 안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그럼 그렇지, 황장로에게 두 번째 전화 걸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증거를 확보해 두어 마음이 놓였다. “사과 훔쳐 먹은 범인을 잡았어요. 사람이 아니고 글쎄 다람쥐였어요, 죄송해요”. 라고 전화를 걸었다. 공연히 생사람을 의심하고 범인 시 한 내 마음이 편견에 젖어 있는 중증 환자 같았다. 조급한 결론에 조급한 행동을 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 요즘 다람쥐는 트레이닝 학교에 가 타쟌의 그네 타기를 배웠을 리는 없는데 나무에서 담벼락으로 건너뛰는 사이버 다람쥐군(群)이라 동작이 엄청 빨랐다. 귀여운 범인이었다.
열매를 보면 나무의 정체가 파악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만나보면 어떤 나무가 그 안에 있는지 알게 된다. 열매는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가지에 매달려 있기만 하면 된다. 어떤 나무인지는 열매의 속성 그 자체가 밝히기에 사과는 굳이 사과인 체하지 않는다. 사과나무는 사과, 토마토는 토마토, 양파는 양파만을 맺는 게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흙이 사과 씨를 품으면 사과나무를 움 틔우고 사과 꽃을 피워 사과 열매를 내놓는다. 이때에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란 토양에 좋은 말의 씨가 뿌려지면 움트는 열매는 좋은 언어 말고는 다른 열매는 맺힐 수 없다는 결론이 선다. 말씀의 씨가 마음 밭에 뿌려지면 씨와 토양의 관계는 상생(相生)으로 직결되는 영생관계를 깨달은 것도 사과나무가 준 과외 공부였다.
내년부터 사과나무는 다람쥐 부양가족까지 불어나 뿌리는 깊이, 가지는 곧게, 이파리는 넓게, 햇볕 마시며 수액 빨아올리느라 광합성 공장이 바빠질 게 뻔하다. 인간사회가 배워야 할 아름다운 상생 법칙이 아닌가. 나의 편견을 무너뜨린 4대 사과시리즈에 입성한 우리 집 사과나무! 과연 훌륭한 과외공부를 지도헸다.
중앙일보 이 아침에 12월 24일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