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주부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이다. 이 부엌은 집 한 복판에 있어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는 주부의 노동량을 줄여준다. 햇볕이 많이 머무는 이 부엌에서 수돗물에 손을 담그면서 처다 보는 파아란 하늘은 축복처럼 늘 투명하다. 낙동강 언덕에 누워 쳐다 본 어릴 적 고향 하늘, 가슴을 늘 시원하게 해준것을 기억해내는 것, 어렵지 않다. 작은 행복 한 줌 아닌가.
아이들은 커서 집을 떠난 후 활동반경이 그만큼 줄어들어 이사온 이 동네는 시니어 맞춤형 동네 같아 안전 게이트의 주거지다. 옛날 살던 산 중턱의 그 집은 180도로 펼쳐진 바다를 눈 아래 둔 거만한 집이었다. 바람이 센 날의 흰 거품을 문 큰 물결이랑의 바다는 장관이었다. 남편은 바다를 사랑했고 특히 그 장엄한 일몰을 사랑했다. 망원경에 의존하여 먼 경치를 당겨 보기를 즐기고 그 영상을 카메라에 담기를 좋아했다. 나는 안개를 뚫고 수천만 갈래로 빛을 투망하며 솟아오르는 해를 사랑했고 그 걸러진 아침 해 아래서 정원 손질하기를 즐겼다. 더욱 아침나절의 반짝이는 잔물결의 동쪽 바다수면을 나는 사랑했다. 일년 열두달 매일 다른 표정으로 거기 있는 바다, 변화를 수심 깊이 감추고 속은 타지만 겉으로 내색 않는 어머니가 거기에도 있었다.
이 집에 와서도 바다는 멀어진 게 아니었다. 바라보기 아름다운 태평양 바다는 토런스 길 끝 서쪽에도 확실하게 위치해 있다. 이처럼 곁에 가까이 있는 우리의 바다는 항상 가득 차 있으면서도 뽐내지 않는다. 빗물, 흙탕물, 개울물, 구정물 등 너그럽게 다 받아드린다. 본연의 푸른색과 짠맛을 고수하는 바다의 품성에서 배우는 게 많다. 바다와 이웃해서 살면서 얻은 분명한 큰 이득 하나 있다. 좁아터진 내 가슴이 바다를 닮아 이해의 폭이 다소 넓어진 점이다.
이 동네에는 일상이 필요로 하는 크고 작은 업소들이 5분 거리에 있다. 시내 나가는 운전 거리도 짧아지고 공항 시간도 절약되니 경제적인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어느 날 나는 이 편안한 집안에 바다를 모셔왔다. 바로 부엌 베이윈도 창틀안에 바다를 들여놓았다. 세일 보트가 떠있는 스테인 그라스(Stained Glass) 바다를, 빛이 투사될 때의 그 바다는 참으로 아름답게 반사된다. 직사각형의 화병인데 아주 정교했다. 나의 발은 부엌바닥을 딛고 있지만 강열한 색깔의 돛 단 세일보트는 나를 데리고 세계를 향해 출항한다. 오대양을 넘나들기도 한다. 상상은 늘 신나는 일과중의 하나가 되었다.
배이 윈도는 커다란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더 소유하려고 욕심 부리지 않는다. 배이 윈도는 부엌안과 바깥을 구분 지으면서 동시에 두 개의 내부와 외부세계를 평화롭게 다 공유하고 있다. 자신의 시계(視界)를 뽐 낼 줄 모른다. 실체의 크기를 능가하는 시계는 생선 눈알처럼 툭 나와 270도나 넓게 세상을 보는 안목기능이 있다. 먼지나 얼룩, 더러우면 그대로 투영해 준다. 세계경관의 내용물을 가슴에 안고 있는 배이 윈도, 그 앞에 서면 그 철저한 정직성과 정확성 앞에 나는 부끄러워진다. 그 많은 사연들을 품으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침묵하는 배이 윈도의 마음을 닮고 싶어진다. 오늘 더욱 그렇다.
지금은 오후, 여린 햇살이 더 아름답게 분산된다. 일몰 가까운 해는 더 찬란하다. 남은 정열을 다하여 마지막 순간을 붉게 태운다. 그 장엄한 산화의 꿈, 세월 파도를 넘어오면서 우린 가진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지닌 보따리가 너무 크다고 찔러댄다. 큰 바다를 거느린 작은 베이윈도의 투명성이 오늘도 세상의 어두운 골목을 내다보게 한다. 푸른 수면을 내려다보는 더 푸른 하늘 송전탑이 저 위에 있다. 상처 입고 소외된 이웃의 신음소리를 듣도록 내 마음 배이 윈도 안팎으로 전파를 보내오고 있다. 거리두기나 비대면 쥼으로 노멀 크러시의 트랜드 파장에 반응, 내 목숨이 떨며 다른 세상을 이렇게 뉴노말로 받아 드리게 한다. (퇴 12/4/2020)
*Bay Window는 큰 유리 한 장의 앞면이 정면이고, 천장과 양 옆 아래 작은 이중 망사 유리문으로 되어 통풍의 기능도 있다. 붙박이식 유리 온실 같아 화초들이 잘 자라는 창틀로 부엌의 면적을 넓히는 건축학적 이점이 있다. 무, 호박, 바나나도 말리고 감을 말려 곶감을 만들기도 한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