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약속2
“왕 함미 없네?” 이틀 전 침대에 누워계시던 증조할머니가 안 계신걸 보고 두 돌된 손자가 말한다. “응, 왕 함미는 하늘나라로 이사 가셨어. 이제 여기 안 계셔”. 손자는 통통걸음으로 달려가 창밖 하늘을 본다. “엄마!” 엄마집 열쇠를 주셨지만 “딸!” 하고 나오는 엄마의 소리 듣고 싶어 문을 두드리곤 했다. 오늘은 대답이 없으시다. 대답이 없는 빈집을 열고 들어섰다. 냉장고를 열었다. 큰딸 좋아하던 생선 반찬이 없다. 작은 딸 비행장에 들려보낼 김밥 재료도 없다. 손자들 해줄 사골 국물, 꿀맛 김치도 없다. 무조건 내 편이던 엄마, 당신보다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고 품어주시던 안전 기지, 엄마가 하나님 나라로 이사가셨다. 창문 밖 하늘을 바라본다.
천국 전출 증명서를 떼러 관공서를 갔다. 창구로 부터 쳐진 가름대 한 줄에 한쪽은 세상으로 전입 증명서 (출생증명), 한쪽은 천국으로 전출증명서 (사망증명)를 발급해 주고 있었다. 그 한 줄 속에 87년 당신의 삶, 외로움, 눈물, 아픔, 고통, 기쁨, 감사를 모두 남겨놓고 훌쩍 떠나셨다. 하나님 품에 안겨 행복하시겠지. 아, 사랑하는 엄마, 보고 싶은 엄마.
울면서 빗길을 엄마가 천국으로 이사하셨다고 신고하고, 전화하고 다녔다. 쇼셜 오피스에 그동안 미국 시민권자로 누린 모든 혜택에 감사하다고 엄마 대신 인사를 했다. 전화국, 전기 수도국, 은행, 정수기 회사, 그동안 감사했다고 하며 엄마의 천국 전입신고를 마쳤다.
아, 바보 같은 우리엄마, 내가 아파 감사하다고 하셨다.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가 아프니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파서 몸서리를 치시면서, 통제할 수 없는 신음을 쏟아내면서, 아픈 팔로 당신 다리 주무른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당신의 통증보다 며칠 전 넘어져 나의 아픈 팔 걱정이 더 되신 엄마. “엄마가 미안해요”라고 하셨다. 모든 것을 다 주시고도 부족한 엄마는 뭐가 미안한지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 삶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욕심을 부리셨다. 아프신 두 달 동안 엄마는 절대 혼자 계시지 않으려 했다. 특히 밤에 혼자 계시려 하지 않으셨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의료진들에게 당신 혼자 두지 않기를 바라셨다. 태국에서 온 선교사 동생이 엄마 집에서 잘 수 있어 감사했고, 병원에 계실 때는 온 가족이 순번을 정해 엄마와 함께 하였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의 사랑은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동생 부부가 토요일 떠났다. 비행장에서 가족 단톡방으로 메시지가 왔다. “엄마가 싸 주신 김밥 없이 처음 비행기를 타네요. 지난 두 달, 내 인생의 가장 힘들고 두렵고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살아갈수록 더 깊이 느끼지만 지난 두 달간 우리 가족이 보여준 사랑은 그 아픔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고 위로였습니다. 모두 모두 고마워요. 다시 만날 때까지 영육 간에 늘 강건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각자의 가슴속에 엄마가 뿌려놓은 씨앗을 품고 각자의 삶의 장소로 돌아갔다. 겨울비는 그 씨앗들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사랑해요, 엄마, 그동안 사랑과 희생의 수고 감사해요. 벌써 엄마가 너무 너무 보고 싶지만 울지 않을게요.’’ 빗물이 내볼을 닦아준다. 봄이 오면 당신이 뿌린 씨에서 싹이 나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겠지. 천국에서 하나님과 엄마가 기뻐하실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겠노라고 엄마와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