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심리 상담사
점심을 급하게 먹었다. 가게는 한가하다가도 점심 식사를 하려면 손님들이 온다. 오늘은 10분 전 12시인데 손님 없을 때 얼른 식사를 하자고 하여 서둘러 식사했다. 반찬 냄새가 날까 봐 양치질도 했다.
손님이 왔다. 목에 걸어둔 마스크를 쓰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손님에게서 멸치의 비릿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미국 사람도 멸치 반찬을 먹나? 하면서 숨을 꾹 참으며 세탁물을 받았다. 수선하던 옷을 마무리하려 재봉틀 앞에 앉으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잠시 후에 손님이 또 들어왔다. 또 마스크를 썼다. 아, 그런데 이 손님에게도 멸치 비린내가 나는 것이었다. 몇 사람에게서 반복하여 나는 냄새에 의문은 더해갔다. 이상하다, 오늘은 이 동네 멸치 반찬 해 먹는 날인가? 가게 앞문으로 뒷문으로 내다보았다. 어디선가 멸치 냄새가 풍겨온다. ‘별일이네’,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재봉틀 앞에 앉으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그런데 그때 마스크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멸치였다. 점심에 먹은 멸치 반찬이 급하게 먹으면서 한 마리가 내 마스크에 떨어졌던 것이다. “이것이 냄새의 주인공이었네” 냄새를 풍긴 건 손님들이 아니고, 동네도 아니고, 바로 나에게서 나는 것이었다.
나에게서 나는 냄새인 줄 모르고 주변을 오해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누구일까? 나 자신을 나는 얼마나 알까? 친하다고 하는 지인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알까?
심리 상담사들은 마음의 어려운 갈등과 문제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속 자신도 모르고 있는 무의식의 부분을 끌어내어 치유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예수님은 어느 날부터 내게 심리 상담사로 찾아오셨다. 그분을 통해 나의 무의식 속에서 발견된 것은 멸치 조각처럼 작은 것이 아니었다. 두 볼이 잔뜩 부어있는 어린아이가 하나님을 불공평하신 하나님, 편애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어려운 환경으로부터 욕심대로 되지 않는다고 삐쳐있었다. 안아올려 만져주시고, 나를 사랑한다고 다독여 주셨다. 그 뒤로는 열등감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되어갔다. 부끄럽고, 생각하기 싫어 눌러놓은 일들을 꺼내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다독일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심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그분이 하신 일들을 나누며 나의 무의식 속 어린아이는 조금씩 성장해 감을 느낀다.
당신의 무의식의 심해에 무엇이 떨어져 혼란케 하는지, 때론 아파하는지 상담자 예수님을 찾아보자. 어쩌면 멸치 한 조각처럼 별일 아니어서 허허 웃으며 떨쳐 버릴 수도 있고, 어쩌면 살기 위해 큰 상처 입고 울고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해 소망의 사람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으실 수도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