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부활절 아침에 받은 선물
헤어짐은 아픔이다. 내게는 어릴 적 아빠와의 사별 이후 이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또 바쁘신 엄마를 대신해 사랑으로 길러주셨던 할머니와의 사별로 인한 상처 또한 오랜 기간 나를 아프게 했다. 시집와서 시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어머니와 정이 많이 들어서 어머니께서 소천하셨을 때에도 영원한 이별을 한 사람처럼 힘들고 아팠다. 그런데 그해 부활절 아침에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선물로 혼자 감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민 와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겨를도 없이 어머니 간병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무릎에 골수염이 심한데 수술 시기를 놓쳐 우리가 이민온지 2년 후 결국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 마취에서 깨어난 어머니는 내 다리가 어디 갔느냐고 하셨다. 나는 병실 밖으로 뛰어나와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 한참을 울다가 들어갔다. 수술 후 우울증과 치매가 점점 더 심해져 가셨다. 나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갈수록 힘에 겨웠다. 성격이 깔끔하고 자존심이 강하셨던 분이라 요실금이 있으신대도 노인용 기저귀를 절대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바지를 하루에 대여섯 개씩 벗어 놓으신다. 15년을 그렇게 워커와 휠체어 생활을 하시다가 101세에 소천하셨다.
예배와 찬양드리기를 좋아하셨던 어머니, 치매를 앓으시면서도 기도는 변함없이 잘 해주시던 어머니, 두 손자를 보시며 “아이고, 이런 대장들을 네가 낳았니?” 하시며 대견해 하시던 어머니, 늘 주변 사람들에게 며느리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 내가 머리를 잘라 드릴 때마다 “내가 머리 자르고 나가면 사람들이 어느 미장원이 그렇게 잘 하느냐고 묻는단다” 다리 수술 이후에는 혼자 나가신 적이 없는 어머니가 이야기를 지어내어 내게 고맙다는 표현을 하신다.
그런 어머니를 돌아가실 즈음에는 나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함께 찬양하자고 하면 다른일에 바쁜 척했다. 하나님과 어머니께 그일이 가장 죄송했다. 장례식 때 나를 그렇게 사랑해 주셨던 어머니께 잘못한 것들이 생각나 죄책감에 울고, 다리 잃고 우울증이 심했던 일 때문에 불쌍해서 울고, 눈물이 한없이 나왔다. 주위 사람들은 장수 하셨고 천국에 가셨는데 왜 우느냐고 그만 울라고 나무랐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렇게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보냈다. 천국에서 어머니를 떳떳하게 볼 수 있으려나? 어머니와 행복했던 시간, 힘들었던 시간, 긍정적, 부정적인 일들을 생각하며 감정의 기복이 한동안 심했다.
생전에 연약한 이웃을 위해 기도를 잘 해 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아름다운 기도의 마음과 영성을 전수 받고 싶었다. 치매를 앓으시는 중에도 일기쓰기를 좋아하셨다. 반복되는 똑같은 일기, 병상에서의 외로움과 천국을 소망하시던 같은 말이 매일 반복되는 낙서와 같은 일기였다. 그런데 어느 한 구절이 강하게 내 가슴에 새겨진다. ‘건강한 다리로 양노 병원 심방 다니며 기도로 이웃을 섬길 수 있었으면…’ 어머니는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나를 다시 만나주셨다.
돌아가시던 해 부활절 새벽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의 어머니는 건강한 두 다리로 천국 어떤 무대에 서서 환한 모습으로 찬양을 부르고 계셨다. 천국에서 고통 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고나니 마음이 날아갈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와 이별하지 않으셨다. 부활의 신앙을 내게 심어주셨고, 기도와 찬양하는 모습으로 영원히 내 가슴에 남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