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미를 찾는 사연
오늘은 종일 빨간 장미 모양의 물음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침부터 특별한 손님이 다녀갔다. 내 가게가 있는 글렌데일 근처에는 노숙자들이 별로 없다. 생판 못 보던 노숙자가 엄청난 냄새와 함께 열린 가게 문으로 들어와 앉는다. 나는 너무나 놀라 나가달라는 말도 못하고 한참을 살폈다. 뭐가 필요한지 물어 봤다. 말을 못하는 사람인지 안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대답이 없다. 나가 달라고 했는데 나가지 않는다.
난감한 상황 가운데 몇 분의 손님이 다녀갔다. “무서워~” 하면서 서둘러 세탁물을 찾아갔다. 여기는 장사하는 곳이니 나가 달라고 했더니 윈도우에 붙여 놓은 마스크를 가리킨다. 아, 마스크를 달라는 것 같았다. 마스크를 준비 못한 급한 손님을 위해 따로 준비해 놓은 것 두 개를 건네주었다. 바닥에 내팽개치며 나간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행패라기보다는 시위 비슷한 노숙자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옆 가게의 쓰레기통을 끌어다가 문 앞에 엎으려고 한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무엇을 원하는데? 했더니 또 윈도우에 붙여 논 마스크를 가리킨다. 마스크를 줘도 내던져 놓고는 어쩌란 말인지 나로선 도무지 그 노숙자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마스크를 박스째 들고 나간다. 내가 또 소리치자 그대로 내려놓는다. 몹시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은데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또 다시 바깥 윈도우에 마스크를 가리킨다. 이렇게 노숙자는 2시간가량 가게 밖 윈도우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윈도우에 진열된 마스크만 반복하여 가리키는 것이 어떤 한 가지 맘에 드는 것이 있음을 늦게야 눈치채게 되었다. 이것 줄까? 고개를 내 저었다. 나는 가게 안에서, 노숙자는 바깥 윈도우에서 다시 물어봤다. “이거?” 한 쪽에 빨간 장미를 수놓은 마스크를 가리키자 맞았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얼른 떼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았다.
때늦게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이 생각났다. 예수님이 보낸 사람인가? 그렇다면 내가 완전 실수한게 아닌가? 점심으로 싸 온 샌드위치도 있었고 냉장고에 먹을 게 있는데, 한쪽 옷걸이에는 3년 이상 안 찾아가는 세탁물을 모아 두었다가 도네이션 할 옷들도 있는데, 하면서 부질없는 후회를 해본다. 순발력 없고 겁 많은 나의 탓이다 생각하며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소독하고 청소하며 또다시 궁금증이 생겼다. 오물 냄새가 나는 시커먼 바지 하나에 뒤엉킨 머리를 한 그 사람이 윈도우에 있는 빨간 장미 수 놓인 마스크가 왜 필요 했을까? 엉뚱한 나의 상상력은 ‘노숙자와 빨간 장미’의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도 평범한 생활이 있었을 것이고, 그 평범함 속에 장밋빛 사랑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오 헨리 작의 ‘경관과 찬송가’ 에서 나오는 소피가 생각났다. 소피는 거리의 부랑자이다. 겨울이 되자 추운 뉴욕의 공원 벤치에서 겨울을 날 수 없다는 생각에 음식과 잠자리가 보장된 블랙웰 섬의 교도소가 그리워졌다. 경관에게 잡혀갈 수 있는 불량스러운 일을 저지른다. 어느 부인 전도사에게 감사절에 받은 깨끗한 옷을 입고, 수염도 깎고, 검은 넥타이를 매었다.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비싼 식사를 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식당 주인이 경관을 불러 교도소로 보내주겠지 하고 시도했지만, 경찰을 부르지 않고 두 사람의 접대인이 끌어다가 바깥으로 내던졌다.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사건을 만들어 보지만 이상하게도 경관에게 잡혀가 지지 않았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소피를 조용한 길모퉁이에 멈춰 서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어느 교회에서 나오는 오르간 소리와 함께 어머니와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고향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재생의 길을 모색한다. 언젠가 모피 수입 업자가 마부 자리를 주겠다는 걸 기억하고 그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순찰 경관에게 잡혀 교도소로 가는 얘기다.
소피가 찬송가를 듣고 재생의 길을 결심한 것처럼, 오늘 노숙자가 장미 수를 놓은 그 마스크를 보고 장미와 얽힌 어떤 사연이 생각나 노숙자 이전의 삶으로 발걸음을 돌이키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주님께 그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