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다는 것에 아름다움
< 격전지에 별길 하늘공원> 양상훈
산새들의 노래 소리 뚝 그치고
보금자리도 모두 잃어버려
멍든 붉은 피로 진달래 뜨락에 물들어.
빗발치는 포화에 흙가루 분분하고.
붉은 안개흙더미가 하늘을 쌓아 올랐다
그해의 9월은 정말 잔인한 달
헐어버린 산허리에 만신창이가 되어
민몸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산천은 초토화, 광야의 초목이
애환에 목 놓아 울었다.
비극의 민족상잔 50년6.25일.
새벽을 깨고 중무장으로 기습한 붉은 집단
3일 만에 피난민보다 앞질러
수도를 미친 듯 짓밟던 야수의 행각
덮치고 밀며 더 물려날 수 없는 절벽.
,
낙동강전선의 최후 보루 보현산 영천전투.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나라의 운명이
국민총화로 사수해야 했던 절박한 전세
교복차림으로 고작 실탄 몇 발로 용감무쌍.
뛰어든 자원 학도병들의 처절한 애국심까지.
중부전선의 보현산 아지트공방은
전쟁 발발 후 처음 승리로
대세를 굳힌 역전의 전환점.
대구를 뚫어 부산함락목표의 막장드라마
9월의 총공세 비밀침투로 보현산에 붉은 아지트.
방어보다 공격으로 돌변한 국군의 절박한 태세
승부의 가름에 다부동혈투의 승리가 진격의 발판.
피땀 눈물로 임시수도를 사수하여 적화를 막았다.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에 샌드위치 된 공산군
패잔병들의 후퇴물결은 패망으로 치 돋았다.
포도 머루 달래 산나물. 풀꽃향기 뿜어내던 동산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오솔 길섶에
붉은핏물 고인 아우성이 통곡하던 당시
치열했던 파편먼지 자욱한 그 역사의 산기슭에
이제야 반세기만에 영혼의 모닥불이 피어난다.
세월의 채널이 뜨거운 가슴에 꽂는다.
전쟁종말의 절망과 어설픈 환희가
애잔한 역사의 부활로 피어난다.
별빛이 찬란한 산간정상에 우뚝 솟은 천문대
검푸른 별길로 열어가는 우주공원
유년시절 오르내리며 즐기던 생명의 숲속 길
이젠 전흔은 사라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하늘공원으로.
우주를 호령하는 지구촌 과학센터로
한반도에 기적의 역사를 썼구나.
우주강국의 위상이 만방에 번쩍인다.
*상전벽해;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엄청나게 변해버린 모습
*보현산-1996년 4월에 정상에 준공(28년)된 천문대가 있다. 경북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산6-2. 해발1,124m로 소백산 천문대 및 대덕 전파천문대와 함께 국내3대 천문대이다.1980년대 기존70cm급 망원경을 훨씬 더 큰 구경의 망원경으로 탑재한 제2천문대 건설사업 이 발주.보현산 정상 천문대 건설을 추진 완공하게 되었다.
보현산은 한국전쟁 초반 벌어진 영천전투의 격전지 중 하나다.1950년 8-9월 북한 수뇌부는 최후 발악으로 탱크 및 중무장한 3개사단중공군을 앞세워 중부전선 영천 보현산을 거점으로 포항 대구로 진입 임시수도 부산을 함락하여 전쟁을 끝장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1사단(백선엽장군)울 중심으로 대구사수 결의, 군관민 학생 합동작전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을 군의,신령 화산 영천 보현산 대구주변을 미군의 B29전투기 및 포병지원으로 엄청난 피해가 있었음에도 적을 섬멸하고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 승리로 인천 상륙작전과 맞물려 적은 전의를 잃고 퇴각하기시작 전쟁 승리의 전환점을 가졌다. 보현산은 높지 않지만 서민들에게는 양식의 창고였다. 각종나물 과일열매,도토리 등 만물산의 보고 였다. 크게 가파르지 않으나,산세가 험하고 꼬불꼬불하여 영천역에서 정상까지 37 km,오히려 동대구역에서33km로 거리로 가깝다. 대중교통은 없고 자가용으로 험한길을 이용한다. 영천시는 대구와 약50마일 떨어져 가깝지만 경주 포항 청송 신령 안동 행 도로와 연결된 교통의 요충지로서 지정학적인 치열한 전쟁터였다. 전후 군사중심지로 발전. 3군사관학교 창설과 더불어 육군의 각종병과 기지(헌병 경리 교육장 등)로 활성화되었다. 보현산은 미군 포병부대가 얼마나 포격을 퍼부었는지 쑥밭은 만들었다. 어쩌든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바뀌어 잠엄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