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떠난 밤하늘별의 애환

                                                                        양상훈

 

               

                  태평양횡단 신천지를 향한 인천 제물포항구의 뱃고동소리는 19021222일 망국의 황혼 빛 갤릭                           호기폭에 눈물 젖어있었다.

                미주한인 이민역사는 약120여 년 전 1903113, 최초의 노동 이 민단 102명이 호놀룰루항에 첫 발을                    내 디며 시작되었다. 첫 노동 이민 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하고 나서 2년 후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였                        다. 5 년 후에는 국권마저 잃어 망국 백성이 되었다.

                낮 서른 땅에서 상륙한 이민자들은 한인 디아스포라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신대륙의 흑 역사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사탕수수농장에 혹독한 하루 노동대가의 일당 50센트는 분홍빛 꿈은커녕

                큰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이때에 웃지 못 할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한인 이민자 대부분이 남자들로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기를 원했                 으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동양인과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법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과도 결혼 할 수                 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사진결혼이란 이변이 등장하게 되었다.

               서로가 중매인을 통하여 사진을 교환했다. 사진을 들고 여성이 남자를 만나 려 하와이를 건너오는 방법이다.               1910-1924년까지 약1,000여명의 사진신부가 하와이에 건너오게 되었다.

                사진만 보고 결혼하다보니 애환의 에피소드가 참으로 많았고 문제도 있었다.

                노동이민 온 총각들은 결혼비용을 마련하기위해 10년 이상 부지런히 일해서 저축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                   니 늙은 신랑과 어린 신부가 맺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해서 건너온 아가씨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연분홍빛 금의환향錦衣 還鄕보다는 척박하고 힘든                      고 생의 나날이었다. 낮에는 사탕수수밭에서 중 노동 을 했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여 오로지 자식과 자식                      교육 에 온힘을 다하였다.

                  이민1세대는 악착같이 적응하여 열악한 환경에서도 교회를 설립하고 교육기관 에 투자하여 교회와 각종단                    체를 중심으로 2세대에게 단합과 전통문화를 심어 주는데 열성을 다하였다.

                 사진 커플이 가장 많이 정착한 마우이 섬은 하와이제도에서 하와이 섬에 이어 두 번째 큰 섬이다. 면적이 1,            883.5km2 인구 약 12만 명으로 년간 3백만 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곳이다. 해변이 조용하고 낭만의 섬에 하                    니문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              마우이 최고봉 할레아칼라는 한인들이 고국에 남겨놓은 별들의 고향을 상기시켜 향수에 깊게 젖곤 한다.                 칠 흙같이 어두운 밤에 빛나는 별이 쏟아질 듯한 별무리를 바라보며 구불구불한 미로를 올라간다. 바로 거                      기서 찬란하게 어두운 바다를 갈라놓는 해돋이 광경은 두고 온 추억의 향수가 가슴깊이 스며든 다. 마우이                       섬에서 하와이 마을 중 가장 걷기 좋은 곳 하나 라하이나항구도시. 첫 수도였던 역사의 면면을 볼 수 있                       는  오래된 목조건물로 서울의 인사동 처럼 정겹고 소박하여 고전을 만끽한다.

                   사진커플로 정착한 마우이섬에 최초의 사진 신부 사라 최라는 여성으로 1910 1128일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그녀의 남편은 하와이 국민회장을 지낸 이 래수씨였다. 사진결혼 2호는 신랑 백만국(당시39                   )와 의주처녀 유명선(당시23 ) 양 부부였다. 기록에 의하면 1910년에 시작된 사진결혼으로 1924년까                      지 하 와이에 951, 미국본토에 115명의 한인사진 신부가 입국했다고 한다.

               1905년 하와이 마우이섬으로 이민 온 최용운 할머니가 읊었던 시에는 그들의 답답함과 슬픔이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강남에 노는 속에/봄바람소식 실은 배 만리나 떨어져 있으니/친척들과 이별 하고 조상님의 묘 버린/슬픔                     을 뉘 알리오/새 울어 눈물 보지 못하고/꽃 웃어 도 소리 듣지 못하니/ 좋은 것 뉘가 알고/ 슬픔인들 뉘가                       알리/ >

 

                   힘들고 고단하고 모든 일이 순탄치 않았을 사탕수수 노동이민자들이지만 우리 의 이민 선조들은 조국을                         위해 쌈짓돈을 모아 해방 전까지 고국에 무려 300만 달러가 넘는 거금을 보냈다고 하니, 그 애국심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2020년 미국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미국 내 한인 인구는 190만여 명, 하와이에 는 5만 여명에 이른다. 102                 명으로 시작된 이민자의 수가 한 세기만에 이렇게 증가한 것이다.

                  미 연방의회는 한인이민의 역사가 시작된 113일을 미주한인의 날로 선포하 고 매년 이를 기리는 성명                       등을 발표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3년 미주한인의 날을 맞아, “1903년은 미국을 개척한 한인 이                     민자들이 하와이 해안 에 도착해 새 역사를 시작한 해라면서 그날 후 한인들은 미국이 성장 ,, 발전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왔다고 강조했다.

                   하와이에서 시작한 미주 한인의 이민 역사가 미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한미동 맹 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는 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하와이 호놀룰루 항구에 뱃 고동소리 후렁차게 합창한가운데 다음 표지판 이 새겨져있다-

                <190212.22일 대한민국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한 121명의 이민 선조들이 19031.13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항구 7번 부두에 처음 도착하면서 120년 의 한인 이민 역사가 시작되었다. 선조들이 개척한 이민                     역사의 숭고한 애국심 을 기억하기위해 인천광역시에서 표지석을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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