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구슬 묻은 울음소리를 내 홀로 어이 들으리
누군가 금방 달려들 것 같은 저 사립 옆
젖어드는 이슬에 몸 무거워 오동잎도 툭툭 지는데
어허, 어찌 이리 서늘하고 푸르른 밤
주막집 달려가 막소주 한 잔 나눌 이 없어
마당가 홀로 서서 그리움에 애리다 보니
울 너머 저기 독집의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이
어찌 저리 따뜻한 지상의 노래인지 꿈인지
―고재종(1957∼ )
‘미스 트롯’같이 성공한 경연 대회를 보면 꼭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낯선 가수가 노래를 시작한다. 첫 구절을 딱 듣는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는 노래도 아닌데 알았던 노래처럼 들린다. 노래가 심금을 울리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처음 읽었는데,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시. 새로움과 친숙함을 함께 전하는 시는 ‘내 맘에 꼭 맞는 이’처럼 금세 독자를 점령한다. 맞다. 나는 지금 고재종의 ‘사람의 등불’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시의 풍경은 예전에 가봤던 어떤 곳이 아니다. 그렇지만 알 것만 같다. 가봤는데 잊고 있었던 것 같고, 이제야 기억해 낸 것도 같다. 기억의 오류일까 묻는다면 시의 기적이라고 대답하겠다. 내 마음속에 흩어졌던 세계는 시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다. 시라는 안내자를 통한 여행이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이 시의 언어와 묘사가 구절구절 몹시 아름답지 않은가. 뒷울 댓이파리에 부서지는 달빛이라니. 마당가를 서성이면서 바라다보는 울 넘어 등불이라니. 이것은 오래전 우리 선조가 개발하고, 우리가 잊었던 장면들이다. 시를 통해 가진 적 없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가질 수 없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가을의 심상이 찾아온다. 이제 그런 계절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