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라는 말은
내 성명 위에 늘 붙는 관사.
이 낡은 모자를 쓰고
나는
비오는 거리로 헤매였다.
이것은 전신을 가리기에는
너무나 어줍잖은 것
또한 나만 쳐다보는
어린 것들을 덮기에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
허나, 인간이
평생 마른옷만 입을가부냐.
다만 모발이 젖지 않는
그것만으로
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박목월(1915∼1978)
박목월, 하면 ‘모밀묵’이 생각난다. 그의 시 ‘적막한 식욕’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시인은 “모밀묵이 먹고 싶다”면서 그것을 ‘싱겁고 구수하고 소박하고 점잖은 음식’이라고 표현했다. 봄날 해질 무렵, 허전한 마음에 먹는 음식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지금 같은 늦봄, 더군다나 좀 허전한 날이라면 박목월과 ‘모밀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시인 역시 소박하고 점잖은 분이었다고 들었다. 시를 읽으니 사실이구나 싶다. 온기와 인자함이 시에 보인다. 아마도 잘난 척, 있는 척, 배운 척도 하지 않으셨을 거다. 세상 사람들 대개는 없어도 가졌다고 부풀린다. 이 세상에 소박하고 점잖은 이는 드물다. 우리는 드문 것을 쉽게 잊거나 혹은 귀하게 여길 뿐이다.
귀한 사람을 함께 만나고 싶어 ‘모일’을 소개한다. 시인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으나 박목월은 스스로 좀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를 다 표현하기에도 부족하고, 식구들 먹여 살리기에도 부족하다. 그는 자신을 애써 꾸미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청록파의 일인이,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는 분이 ‘고맙고 눈물겹다’하니 고개가 숙여진다.
어른이란 저런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살아가는 사람. 비난보다 이해로, 욕망보다 소망으로 살고 싶다. ‘모밀묵’같이 담백한 사람을 닮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