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용 시인의 시를 한 편 소개한다. 사실 미리 꼽아두었던 시들은 더 많았다. 막걸리를 먹고 울던 아내의 시. 조금 모자란 듯한 ‘광렬이’가 나는 참 좋다는 시. 기억하고 싶은 시들은 대개 구체적인 시였다.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그는 노동 현장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다. 주로 추상이 아니라 구체에서 시를 구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살아있는 사람이나 실제 인생이 등장할 때 그의 시도 살아 숨 쉰다.
반면 ‘흐린 저녁의 말들’에는 특정한 사람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사건도, 대화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우리의 삶이 없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시 안에는 켜켜이 쌓인 인생의 종합이 들어 있다. 하루하루의 인생을, 그 낱낱을 여러 번 찌고 말려서 엑기스만 얻은 듯 구체적 삶이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오랫동안 인생의 골수를 탈탈 털어왔다고나 할까. 시인의 노고에 감사하고 싶을 정도다.
이 시의 묘미는 읽는 우리를 엄청 찔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워진 따뜻함과 오래 남은 경멸. 절망과 거짓말을 믿는 나와 타인들. 사랑할 능력의 상실. 구구절절 틀린 말이 없고 나 자신을 겨냥한 이야기 같아 뜨끔 한다. 무엇도 잘못한 것 같지 않지만, 인생은 잘못 산 것 같은 날, 이 시는 우리 가슴에 들어와서 나가지 않는다. 시가 좀 슬프게 읽히는 걸 보면, 따뜻하게 사랑하며 잘 살고 싶은 희망은 남았나 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