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록 ― 김관식(1934∼1970) 

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 누운 지 이제 10년.
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 길은 없는 것이냐. 
간, 심, 비, 폐, 신…
오장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생물학 교실의 골격 표본처럼
뼈만 앙상한 이 극한 상황에서… 
어두운 밤 턴넬을 지내는
디이젤의 엔진 소리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이 오른다
기침이 난다. 
(…)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 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 것, 
백금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보다.
 

김관식 시인은 아깝고, 대단하고, 안타깝다. 그가 일찍 간 것이 아깝고, 그의 정신과 재능이 대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 흔히 말하기를 천재는 요절한다는데 김관식 시인이야말로 요절하고 만 천재였다. 김관식 시인에게는 몇 가지 일화가 따라다닌다. 명함에 직함 없이 ‘대한민국 김관식’이라고 찍어 다녔던 일. 미당 서정주의 처제와 혼인을 올렸다는 사실. 필체는 또 얼마나 명필이었던지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가람 이병기 선생과 함께 한자 교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듯 기상과 재주가 높았던 시인은 병을 앓다 지고 말았다. ‘병상록’은 그 앓던 시기의 말년 작품이다. 시인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본인의 죽음 자체보다 시인은 아비 없는 자식들이 어떻게 살까 걱정한다. 그리고 가난에 시달릴 아이들이 부디 가난에 지지 말기를 당부하며 이 시를 썼다.

부모의 도움 없이 자립하기도 힘든 세상에, 이 무슨 소리인가 핀잔을 주실 분도 계시겠다. 가난에 주눅 들지 않을 방법 따위는 없다 하시는 분도 계시겠다. 그런데 시인이 그것을 몰랐을까. 너무 잘 아니까, 더 당부했을 것이다. 가난과의 싸움에 백전백패 지고 마는 세상이어도, 누군가 그것이 옳지 않다 말하는 일은 필요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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