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기다린다          

                                                                                                                         한영

 

한국에 가서 짐을 풀자마자 서울 근교에 있는 친구 S를 만나러 갔다. 미국에 살던 친구는 정신이 많이 흐려졌다. 남편이 그녀를 데리고 한국에 나갔다가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는 바람에 한국에 주저앉게 되었다.

친구는 미소 짓는 듯했다. 얼굴은 나를 향하고 있지만 정확히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 케빈 엄마야친구가 당황하지 않게 내 존재를 빨리 말했다. 오랜 친구이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부터는 서로를 누구의 엄마로 불렀다. 만나지 못한 6개월 사이 그녀는 조금 더 멀리 가버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진행이 너무 빠르다. 놀랄 만큼 발전한 현대 의학으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게 없다.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과정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보니 아픈 마음이 무너진다.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녀는 총명하면서도 신중하고 이해심이 많았다. 같은 나이이면서도 나는 이유도 모르게 달려드는 불안한 감정을 그녀에게 기대서 해소하고 위로받았다. 왜 그랬는지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버겁게 생각됐다. 감정이 요동칠 때,  맥주 한 잔 나눠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어느 겨울에는 방송국에서 여론 조사하는 알바를 같이하기도 했다. 운동 신경이 좋았던 그녀는 나에게 자주 산행을 권했다. 지금보다는 대단히 날씬한 몸매였는데도 나는 언덕을 오르는 것이 힘들어서 헉헉거렸다. 그러면 멈춰 서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4학년 강의가 12월 초에 끝나고, 졸업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강원도에 있는 소도시로 여행 삼아 가 보자고 했다. 사실은 취업을 위한 면접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 하였으나 우리 둘은 합격이 되었다. 11일부터 일하도록 발령을 받았다. 눈 덮인 그곳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이 마음에 들고, 서울을 떠나 보고 싶기도 해서 우리는 그곳에서 일하기로 했다. 연말에 짐을 싸서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둘이 기숙사 방을 같이 쓰면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저녁이면 침대에 누워 마주 보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하소연하고, 동료들과 감독들의 뒷담화도 하며, 그렇게 사회 초년병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직장에서 동료와의 갈등이 극심했던 어느 날, 우리는 시장통의 작은 술집에서 막걸리와 파전을 마주했다. 빈속에 마신 막걸리 서너 잔에 나는 취해 버렸다. “여기 네모난 바닥은 왜 자꾸 움직이는 거냐?”라고 해롱대며 휘청거렸다. 친구가 내 팔을 잡아주었는데, 그다음은 어떻게 됐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깨어보니 기숙사였다.

내가 뒤처질 때마다 기다려주고, 넘어지려 할 때마다 잡아주던 그녀의 모습은 그 후로도 수십 년을 이어왔다.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살면서도 우리는 가까운 지역에서 살게 됐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날 때는 자식 키우는 어려움을 서로 하소연했고, 그에 곁들여 남편의 흉을 보는데 더 열을 올리곤 했다. 그녀 앞에서는 나의 인간적인 약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꺼내 놓을 수 있었다. 친한 친구와 가까이 살며 서로의 삶을 서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친구가 언어를 자꾸 잊는 듯했다. 단어를 짜 맞춰서 말을 만드는 것에 서툴렀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우리 나이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그녀에게 다가온 이 큰일은 현실이고, 이런 현실은 감당하기 쉽지 않다.

 

작년 여름, 미국에서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다. 가족들의 근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그녀를 대신하여 내가 대신 말을 해 주었다. 모임이 끝나고, 차를 향해서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면서 내가 물었다. “자꾸 기침한다고 했잖아, 의사가 뭐래?” 친구가 머뭇거렸다. 그 순간 난 깨달았다. “, 내가 벌써 물어봤지나는 같은 질문을 몇 번째 계속하고 있었다. 맑게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이 내게 말했다 그래, 그런데 괜찮아그녀는 늘 그랬다. 나를 인정해 주고 기다려 주고, 괜찮다고 말해줬다. 이미 정신이 허물어지고 있는데도.

 

불쑥불쑥 그녀가 생각난다. 자주 가슴이 아프고 울적해진다. 이제 50년 절친을 잃는다는 나의 상실감과 아쉬움 때문인지, 무엇을 망각하는지조차 모르는 친구와 동일시한 마음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그녀와 함께한 오랜 세월이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만 같은데, 같이 이야기를 나눌 그녀는 없다. 그녀가 있는데 없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지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다. 나는 내게 오지 않을 그녀를, 다시 올 것처럼 오늘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