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 김영희

 

 

 

 

 

빈방이라 했지만 비어 있지 않았다. 주인이 부재중인 방에는 사용하던 물건들이 더미를 이루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방을 가득 채운 세간들을 마주하며 삶을 살아갈수록 안부터 허무는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엄마는 동생과 한집에 살고 있다. 동생네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살림을 합친 것이다. 엄마는 세월의 더께가 쌓여 가니 아들에게 보탬이 된다는 뿌듯하게 생각했지만 살림을 도맡아 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조카들이 중학생이 되자 엄마는 혼자 살겠다는 말을 여러 번 내비쳤다. 집을 새로 마련하다는 것이 여건상 쉽지 않아 뭉그적거리다 몇 계절이 지나가버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부동산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적당한 집이 있다는 말에 댓바람에 달려갔다. 사무실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에 나 홀로 한 동의 아파트가 외롭게 서 있었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니 아파트 마당에는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발치에서 어룽대고 있었다. 아파트 소개업을 하는 그녀는 현관문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차가운 금속이 찰칵하는 울림과 함께 어떤 슬픔의 시간들이 덜컹거리는 문짝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모든 게 지워진 어둠 속에서 물큰한 냄새가 콧잔등을 스치며 지나갔다. 순간 속이 메슥거렸다. 그녀는 현관 입구에 조심스레 발을 들이밀려 수위치를 찾았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실내로 들어서니 시력이 순간 멈춘 듯했다. 불을 켰으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형광등은 요란하게 깜박이기만 할 뿐 보탬이 되지 못했다. 침침한 분위기가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주위 사물들이 하나 둘씩 망막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 없는 빈방은 고요와 정적 속에서 시간이 박제되어 멈춘 듯했다. 괴괴한 기분이 갈라진 벽 사이에서 스멀거리며 주위를 에워쌌다. 방에 대한 첫인상은 생소하고 낯설었다.

그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래되지 않아 방을 미처 치우지 못했다고 했다. 유품의 수령인이 없어 유품 정리 신청을 조금 전 그녀가 했다는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장롱 속 서랍은 반쯤 열려진 채 있었다. 유족들이 유품을 가져가며 서랍 문은 미처 닫지 못했나 보다. 문갑 위 액자에는 웃음 띤 얼굴이 정지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 사진 속의 할머니는 고왔다. 빈방의 공허를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니 주인 없는 물건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듯 이 세간들도 머지않아 폐기될 것이다. 눈으로 보고 만지던 물건들은 그 사람의 운명이 끝나는 지점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각각의 의미와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물건들은 재활용 센터로 보내지기도 하고, 폐기물로 처리되어 쓰레기더미에 쌓여질 것이다.

빈방에 서 있으니 이승에 벗어 놓고 간 슬픔이 나에게 전이된 듯했다. 생의 어두운 마디마디가 집 안 여기저기 스며든 곳에 엄마를 모신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는 전 주인의 영상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서둘러 다음 집을 보자며 채근했다.

그녀는 평수가 조금 더 넓은 아파트로 향했다. 주인은 중후한 분위기의 중년 신사였다. 고풍스런 가구들로 방을 가득 채운 살림은 생활이 여유로웠음을 짐작하게 했다. 숨죽인 공간에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엇이 살아 있다는 것이 반가워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냉장고도 많이 적요했는지 ‘나 여기 있다’는 소리를 냈다.

중년의 주인은 며칠 전 할머니 삼우를 지냈다고 했다. 유품을 치우려면 며칠간의 말미가 필요할 거라고도 했다. 또다시 정적이 부유하는 빛처럼 떠돌았다. 나는 할머니의 작은 소품들에 눈을 보탰다.

“할머니께서 솜씨가 좋으셨나 봐요. 예쁜 수예품들이 많아요.”

남자는 내가 유품들에 관심을 기울이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시큰둥한 목소리로 속말을 하듯 웅얼거렸다. 하루속히 물건을 정리하고 새롭게 단장해 집을 처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파트 창문으로 늦가을의 낙엽이 빙그르 내려앉았다. 생을 마감한 낙하가 소슬한 여운을 남긴다. 잔바람에도 느티나무는 겨울을 준비하며 제 몸의 일부를 내려놓는다. 나무도 때가 되면 제각각 사연을 품은 나뭇잎과 결별을 하듯 우리네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 방에서 바라보는 낙엽은 이우는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무언을 암시해 주었다.

누구나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나면 주인이 사용한 가재도구들은 타인의 손에 치워지게 된다. 주인에게는 하나하나 추억과 함께한 손때 묻은 물건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애착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노년의 삶은 조금씩 비워야 한다. 한 존재가 세상을 등비녀 일생을 함께한 유품들은 흔적 없이 버려져 기억 속에서 서서히 지워진다. 

그녀는 어느 방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노후의 삶 자체가 황량하지만 방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은 비애감에 젖어 돌덩이를 가슴에 안고 있는 듯했다.

며칠 뒤 엄마는 멀지 않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이삿짐을 꾸리는 엄마에게 주변을 정리하길 당부했다. 필요 없는 물건은 누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들에게 주도 싶은 물건이 있으면 지금 받고 싶다고 했다. 주인을 기다리며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방보다 꼭 필요한 것만을 소유한 깨끗이 정리된 방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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