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당신을 살립니다
나 태 주
1. 시가 당신을 울립니다
우리들 인간은 이성도 있고 감성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성은 무엇인가를 알고 기억하고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마음의 능력입니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고, 또 개인의 능력을 평가할 때도 이 분야를 중심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아예 인간의 능력이나 가능성의 척도를 이성적인 요소로만 국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성적인 요소보다는 감성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을 합니다. 우리가 행복하다 불행하다 말하는 것도 감성적인 요소나 조건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스펙트럼이라 하겠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시비(是非)의 마음은 이성적인 마음에서 비롯되는 마음이고 호오(好惡)의 마음은 감성적인 마음에서 출발하는 마음입니다.
시비와 호오, 그 가운데 보다 강력한 마음은 호오의 마음입니다. 일단 시비, 옳고 그름의 마음은 한 번으로 결판이 납니다. 그러나 호오, 좋고 싫음은 절대로 한 번으로 결판이 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뿌리가 깊고 수정이 잘 되지 않는 마음이 바로 그 마음입니다. 우리들 삶을 이끌고 가고 멀리까지 안내하는 마음도 바로 호오의 마음, 즉 감성의 마음입니다.
문학 작품 가운데서도 시는 오로지 감성의 마음에 의지하는 예술품입니다. 그러므로 시는 사람의 마음을 울려줍니다. 아니, 울려주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울려준다는 것은 감동을 말합니다. 감동, 임팩트, 그것은 시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요 조건입니다. 감동을 하게 되면 엔도르핀보다도 강력한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나온다고 그럽니다. 이 호르몬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만족감을 갖게 하여 끝내는 행복감에 이르도록 한다고 그럽니다. 그렇다면 시를 읽고 시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들 인간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시가 당신을 위로하고 응원합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즐거움을 쫒는 성향이 강하고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합니다. 하기 좋은 말로 헌신, 봉사, 희생, 그런 말들을 하지만 인간은 다분히 이기적인 존재이고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속일 수 없는 한 본성입니다. 왜 우리가 시를 좋아하고 시를 읽습니까? 시를 읽고 좋아해서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시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시를 읽지도 않을 것입니다.
역시 시도 읽어서 이로움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이로움입니까?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이로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이로움, 정신의 이로움입니다. 마음의 기쁨이요 만족입니다. 한 발 더 나간다면 힘겨운 삶에 대한 위로와 응원입니다. 그래, 당신 마음을 내가 알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야. 당신은 그 힘든 마음이나 어려움에서 헤어나야만 해. 그래, 당신은 충분히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칭찬 받을 자격이 있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내가 그것을 보장하고 내가 그것을 응원할 거야.
만약 우리가 읽는 시가 이런 암시를 주고 이런 역할을 해준다면 그 누구도 시를 읽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심정으로 시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의외로 사는 일이 힘들고 지친다고 합니다.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호소합니다. 의기소침하고 소외감, 열등감에 빠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 위로가 되겠고 무엇이 응원이 되겠습니까?
결코 밥이나 옷이나 그런 현실적인 것들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마음을 다치고 마음이 힘든 데에는 마음의 치료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려 주고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마음을 밝게 해주는 그 어떤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때 가장 적절하게 동원되어야 할 것은 시입니다. 최근,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까지도 열정적으로 시를 좋아하고 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가 바로 우리들 정신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묘약이란 것을 새삼 느끼고 깨닫곤 합니다. 마음의 파이팅! 그 뒤에 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시가 당신을 살립니다
실로 시는 하찮은 문학형식입니다. 외형도 왜소하고 내용도 별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더욱 무익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러지만, 그렇지만 말입니다. 가끔은 시 한 편을 읽고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고 삶의 궤적을 바로 잡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주에는 내가 관여하는 공주풀꽃문학관이란 집이 있습니다. 주말이면 주로 그곳에 머물며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 대화를 하는데 때로는 방문객들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기도 합니다. 어느 날인가는 서울에서 찾아온 여성 독자분이 자신은 우울증에 오래 시달렸는데 시를 읽고 나서 우울증이 나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라는 마음이었고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아, 정말로 그런가? 정말로 시가 우울증 환자를 고칠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그것이 그렇다면 진정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큰 병 얻어 중환자실에 널부러져 있을 때
아버지 절룩거리는 두 다리로 지팡이 짚고
어렵사리 면회 오시어
한 말씀, 하시었다
얘야, 너는 어려서부터 몸은 약했지만
독한 아이였다
네 독한 마음으로 부디 병을 이기고 나오너라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
아버지 말씀이 약이 되었다
두 번째 말씀이 더욱
좋은 약이 되었다.
이것은 내가 쓴 「좋은 약」이란 작품입니다. 2007년, 큰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있을 때 연로하신 아버지가 면회 오셔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쓴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란 문장입니다. 실은 이 문장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징글징글’이란 단어는 결코 긍정적인 경우에 쓰이는 단어가 아니고 부정적인 경우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말 밖에는 다른 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
정말로 나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순간을 견디면서 ‘징글징글하’다는 말이 그렇게도 마음의 힘이 될 수 없을 만큼 힘이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잘 쓰는 표현에 ‘내 몸이 기억한다’란 말이 있는데 그야말로 나의 마음만이 아니라 나의 몸, 그러니까 전신이 기억해서 삶에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인내가 된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아니 이 문장은 힘든 사람들을 살렸다는 것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말이란 것은 이렇게 중요하고 소중하고 다급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어 하나나 짧은 문장에 관한 이야기지만 실지로 시는, 시를 읽는 사람만 아니라 시를 쓰는 시인에게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나는 왜 어린 시절부터 시에 매달렸고 시를 썼던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이고 시를 쓰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방법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실로 한 편의 시가 인간을 살립니다. 시를 읽는 독자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시인도 살립니다. 부디 당신이 어렵사리 찾아서 읽는 시가 당신을 살리고 당신의 이웃을 더불어 살릴 수 있는 묘약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