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게 / 강천

 

봄아, 너는 지금 어디쯤 오고 있니. 너와 함께 나의 삶이 시작되리라 하여 우리의 만남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단다.

내가 사는 곳은 푸른아파트야. 그냥 푸른이 아닌 더푸른아파트. 이름이 말해 주듯 근 삼십여 년 동안 터줏대감으로 자란 나무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지. 도심에서 이만한 공간을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다. 그래서 나는 이 ‘푸른’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가졌어.

내가 태어난 날은 무더운 여름날이었단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만난 그들은 나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듯했지. 장막을 치듯 겹겹이 가려 세상에 노출하지 않으려 했어. 햇살이 뜨거울까 온몸으로 막아주고 비가 오면 가림막이 되어 주었지. 한편으로는 세상모르는 내게 쉴 새 없이 소곤거렸어. 대대로 이어져야 할 이야기라면서 자기들의 알음을 우격다짐으로 각인시켜 놓고서는 어느 가을날 훌훌 떠나 버렸지.

나는 이와 같이 들었어. 아파트에 봄이 오면 매화향이 온 동네에 가득하다고. 백목련이 하얀 등불을 내거는 밤은 봄 축제의 전야제 날이라고. 노랑 개나리로 울타리를 만들고 연분홍 진달래로 잔칫상을 차린다 했지. 왕벚나무에 꽃이 들면 잔치의 절정이라고. 민들레, 꽃등에, 딱새들, 입주민 모두가 행복한 날이라고. 꽃들의 공 연이 끝나면, 엷은 빛 연두로 펼쳐질 우리네 이파리들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노라고.

또 이와 같이도 들었어. 너의 이름은 겨울눈이라고. 너는 장차 처진개벚나무의 이파리가 될 것이라고. 앞으로 닥쳐올 지독한 겨울 시련을 홀로 이겨내어야 한다고. 절대로 꽃보다 세상 밖으로 먼저 나와서는 안 된다고도 들었지. 그때는 몰랐지만 그들이 떠나버린 지금에야 알겠네. 잘 보이지도 않는 싹눈 하나를 왜 그리도 애지중지하며 미주알고주알 이었는지를. 잎 아래에 겨울 잎눈, 꽃 아래에 겨울 꽃눈, 저마다 제 꿈을 심어놓았다는 걸.

갑자기 아파트가 부산해진다. 전기톱 소리도 요란하다. 고가 사다리가 뱀 대가리처럼 고개를 치켜들더니 우지끈 반 아름이 넘게 자란 느티나무 둥치가 사정없이 잘려 나간다.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이런 사달이 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었는데. 우리들이 좋아서 이름까지 더푸른으로 바꾸었다 하였거늘.

지나던 주민이 “왜 멀쩡한 나무를 자르느냐”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리고 “법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일조권인가 조망권인가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숲이 너무 짙어 무섭다는 민원이 있었다는 말까지도 오간다. 이럴 바에야 무엇 하러 몇십 년이나 정성을 들여가며 수형을 다듬었다는 말인가. 가지치기 정도가 아니고 아주 본줄기를 통째로 잘라내고 있다. 남아 있는 몰골이라고는 두어 길 어림의 매끈한 밑둥치뿐이다. 이 꼴로 만들어 놓고서 ‘조경했다’는 보고서를 써야 한다며 사진기까지 들이댄다.

내 차례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키다리 메타세과이어를 지나 멋쟁이 은행나무, 떡대 같은 팽나무마저 둔탁한 비명만 남기고 허물어졌다. 억울하다. 법 절차에 따라 입주하였고 법으로 정해진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나무숲이 우거져 읍내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는 부동산 소장님의 말씀에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동네방네 자랑질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법 조항을 들먹이며 낯빛을 바꾼다.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던 법. 그놈의 법은 언제나 이랬다. 허가 조건을 위한 눈가림이었고, 책임 모면을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번거로운 일이라도 생기면 톱자루를 쥔 이들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말 한마디 못 하는 우리에게만 원칙의 잣대를 들이댔다. 수박덩어리처럼 눈에 훤히 보이는 자신들의 과오는 밀쳐놓고 배추씨만 한 꼬투리를 잡아서는 가차 없이 살점을 도려냈다. 가위질 하나에도 법을 들먹이다가 제 공치사가 필요할 땐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의 거름을 슬그머니 던져 놓았다. ‘법대로 했다’라고 쉬이 말하지 마시라. ‘도를 말하는 자는 도를 알지 못하는 자’라는 말도 있으니. 세상 어느 법규에 바지랑대만 남겨두고 나무를 잘라버리라는 조항이 있는지 따져나 보고 싶다.

폭풍이 지났다. 내 윗동과 아랫동아리가 따로 썰려 나갔다. 토막토막 잘리어 포개진 둥치와 갈가리 찢긴 가지들이 나란히 누웠다. 같은 처지로 거꾸로 처박혀 있는 회화나무를 바라본다. 저항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저 낯빛. 하소연을 생으로 꿀꺽 삼키려다 숨통이 막혀버린 나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한때는 신성한 나무라며 특별대접을 받기도 하였건만.

나는 이런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내 삶이 자의를 저당 잡힌 채 타자의 손에 의해 결정되어진다는 말. 공존은 책상머리에 앉아 자판이나 두드려대는 자들의 편의를 위한 그들만의 단어였다는 말. 성가심 회피를 위해서라면 비루한 나무 몇 그루 따위는 눈길의 대상조차 아니라는 말. 그들의 심보가 이리도 좁아터졌다는 말.

그나마 나를 보호하고 있던 아린도 힘을 잃었다. 가지 하나도, 이파리 하나도 남겨두지 못했으니 저 밑동만 멀건 나무는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아낼까. 자자손손 이어져야 할 이야기를 전하지 못한 죄는 또 어찌 감당해야 하나. 더푸른아파트를 푸르게 하지도 못했으니 애증 어린 이 이름인들 누가 있어 지켜갈까.

갈증이 몰려온다. 졸음이 쏟아진다. 인제 그만 떠나야겠어. 아파트야 미안해. 깃들어 살아야 할 새들아, 매미들아 미안해. 꿈에 부풀어 찾아올 새봄아, 너에게는 더더욱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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