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틀집 2층 손님
유숙자
의사들이 쓴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래전이라 지금도 맥을 이어 오는지 모르겠으나 '삐따 알레 고리까'라는 수필집이다. 임상 경험을 통하여 살려낸 글은 여느 수필과 확연히 달랐다. 의사들의 수필 읽기를 즐기는데 가슴 저린 감동의 글이 많아서였다.
몇 년 전 서울 갔을 때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언니로부터 들었다. 동네 의원에 갔다가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의사들이 쓴 수필을 읽었는데 글 제목이<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 했다. 외동으로 자란 딸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가슴에 담고 평생을 홀로 사셨던 아버지를 애도하는 글이었단다. 혹시 오래전 우리 이웃에 살던 대학생 부부의 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하도 오래전 일이니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했다.
언니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나 너무도 선연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어서 아마도 그분들의 딸이 아닐까 하는 바람이 확신으로 치닫고 있었다. 바람결에 들렸던 소식에 의하면 외동딸이 잘 자라 의사가 되었다고 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내 마음속에 슬픈 이야기로 남아 있기에 음악을 들을 때면 수십 년 전 일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곤 한다.
중학교 무렵이었을게다. 봉숭아 꽃씨주머니가 된 볕에 견디기 어려워 탁탁 터지던 여름. 앳된 남녀가 솜틀집 2층으로 이사 왔다. 세간 하나 없이 보퉁이 서넛에 기타가 전부였으나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가난한 사람들 같지 않았다. 남자는 인물이 준수하게 잘 생겼고 여자도 귀염성스러운 얼굴이었다. 오누이 같기도 하고 연인 같기도 한 아주 보기 좋게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들은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학교를 오갈 때 이외에는 드나듦이 거의 없었다. 남자는 서울대학교 배지를 달고 있어 주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할머니는 세를 놓아 경제에 보템이 되는 것 보다 젊은 사람과 함께 살게 된 것이 좋아 그들을 '2층 손님'이라 불렀다.
대학생은 황혼이 물들 무렵이면 베란다에 앉아 기타를 켰다. 가냘프게 들리는 선율이 마치 가슴을 뜯는 것 같이 애절했다.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기타라는 악기도 생소하고 듣기 힘든 곡이었다. 그의 기타 소리는 호소력이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빼앗았다.
이사 온 지 얼마 지나고부터 여학생의 몸에 변화가 일었다. 얼핏 보기에도 임산부 티가 역력했다. 그들이 남의 눈을 피한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배부른 여학생은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두문불출했다. 그즈음 여학생의 어머니인 듯한 사람이 딸을 찾아 왔다가 깊은 한숨만 쉬다 돌아갔다고 한다. 그해 겨울, 여학생이 몸을 풀었다. 솜틀 집 할머니가 해산을 도와주었다. 예쁜 딸을 낳았다. 산고가 심했단다. 아기를 낳았건만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기엄마는 첫아이 산고와 외로움이 겹쳐서였는지 울고 울어 얼굴이 퉁퉁 부었다. 솜틀집 할머니가 세 놓은 죄로 첫국밥을 끓여 주고 해산구완을 해주었다.
아기가 태어난 후부터 아기엄마는 이따금 문밖출입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대학생 부부는 두 집 모두 행세깨나 하는 집 자녀인데 사돈지간인 형수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져 양가에서 내쳐졌다고. 대문을 열어 놓고 살던 시절, 텔레비전도 없던 때, 골목 안 누구네 집에 수저가 몇 벌인 것까지 알던 시절이었기에 남의 일거수일투족이 최대의 관심사이고 화제였다. 대학생이 어떻게 학업을 이어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따금 아기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면 장바구니가 제법 두툼했다. 인정 많은 솜틀집 할머니는 대학생 내외가 딱하기도 하지만 혈혈단신으로 솜이나 틀며 살고 있었기에 가족처럼 돌봐 주었다. 그 무렵 중화 반점 안주인이 유모를 구한다는 소식이 들려 할머니가 아기엄마를 소개했다.
아기엄마가 중화 반점 아기에게 젖을 물리러 갈 때쯤이면 아빠는 베란다에 앉아 기타를 켠다. 백일이 가까운 딸에게 한쪽 젖을 먹이고 다른 한쪽은 중국인 아기에게 주러 간다. 아기가 엄마의 한쪽 젖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혀를 내두르며 자지러지게 울어도 떼어 놓을 수밖에 없다. 아기는 아빠의 기타 소리를 들으며 울다 지쳐 스르르 잠이 든다. 그런 날 음률은 여느 때와 사뭇 달랐으리라. 빈 가슴에서 나와 허공으로 스러지는 연기 같았을 것이고 가락의 높낮이도 없이 가슴을 털어내는 파열음, 체읍이었을 것이다. 아기를 달래려 켜는 것인지 자신의 고뇌를 풀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해가 뉘엿거릴 때쯤 들리는 음악은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 했다.
타레가는 스페인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근대 기타연주법의 틀을 완성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서 제자인 콘차 부인을 사랑했다.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지만 정숙한 콘차 부인은 그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에 상심한 타래가는 스페인 곳곳을 여행하다가 알함브라 궁전에 머물게 되었다. 실연의 아픔을 안고 알함브라 궁전에서 창밖의 달을 보며 불면의 밤을 보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콘차 부인을 그리워하며 작곡한 곡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대학생이 자신의 앞날을 예견했을 리 없건만, 하필이면 이같이 애절한 곡을 켰던 마음을 모르겠다. 왜 이 곡만 켰는지 알 수 없으나 곡명이 무엇인지 무슨 내용이 담긴 곡인지 모르면서도 가슴을 뜯는 듯한 소리가 너무 슬프게 들렸다. 아마도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이기에 나름대로 대학생 환경에 음악에 얹어서 들었기에 더 애잔했던 것 아닐까. 나중에 알게 되었던 그 음악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었다.
아기엄마가 잘 먹어야 양질의 젖이 나오기에 중화 반점 안주인은 자기 아이를 위해서라도 산모를 잘 챙겨 주었다. 겨우 밥걱정만큼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동네 사람들이 정성껏 돌상을 차려 주었다. 이제 봄이 오면 대학생이 졸업한다. 동네 사람들의 관심과 안쓰러움 속에 차차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거기에는 솜틀집 할머니의 헌신적인 돌봄이 뒷받침되었던 탓이다.
졸업하면 가난을 벗게 되고 고생도 끝날 줄 알았는데 두 아기에게 무리하게 젖을 빨리던 새댁은 산전부터 이어온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수유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간간이 맥이 없고 피곤하고 잔기침을 하기에 감기인 줄 알았다가 쓰러져 병원에 가서야 알게 된 병명, 폐결핵이었다. 삶의 희망인 남편을 바라고 '졸업만 하면 가난을 벗어나리라'를 붙들고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왔기에 쓰러지고 나서야 중병임을 알게 되었다. 중화 반점 안주인이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동네 사람들도 병원비를 보탰으나 정성도 때가 있는 것 같다. 병이 깊을 대로 깊어진 데다 영양실조에 빈혈까지 겹쳐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딸과 사랑하는 남편을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솜틀집에서 초상이 치러졌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장례식은 성대했다. 양가, 친척까지. 대갓집 마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인간이 갖출 수 있는 최대의 형식이 동원되었다. 그들 모두 후회의 빛이 역력했다. 말을 잃었다.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힘들게 살았던 아기엄마에게 이 형식은 차라리 희극이었다. 3일 장을 거하게 치른 후 대학생은 아기를 안고 동네를 떠났다. 솜틀집 할머니는 섧디 설게 울다가 몸져눕고 말았다. 친자식처럼 돌봐 주었기에 혈육을 잃은 것처럼 통곡했다. 누군가 줄초상이 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1년여 후 아기 아빠는 딸을 데리고 솜틀집을 방문했다. 그 후 유치원에 들어갔다는 소식부터 아이가 자라가는 과정을 솜틀집 할머니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세월은 흐르고 영특한 딸이 공부를 잘하여 의과대학으로 진학했고 아빠는 여전히 딸 바라기로 살고 있다고 전해진 후 소식이 끊겼다. 솜틀집 할머니가 돌아가신 탓이다.
솜틀집 할머니와 대학생 부부의 이야기는 세월과 함께 그 골목에서 차차 잊혔으나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가슴에선 쉽게 지워지지 않는 애상으로 남았다.
당시 관행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합이었으나 그리워하고 마주 보며 사느니 후회 없는 삶을 이루자고 약속했던 사돈지간. 고난을 겪더라도 한 곳을 바라보며 함께 가자 택했던 선택에 발버둥 치며 맞섰으나 인생이란 기대하는 것만큼 평탄하지도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수학 공식처럼 와주지 않았다. 그들의 순애는 주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만 안긴 체 어처구니없이 끝났다.
한세상 참으로 덧없다. 긴 인생을 놓고 볼 때 지극히 찰나적인 그들의 사랑은 삶의 허무를 사유하게 하는 흔적들만 남겼다. 먼저 떠난 아내를 가슴에 묻은 체 평생 가슴앓이하다가 그도 그리운 이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났으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듣는다.
침묵을 연주하던 황혼의 기타 소리가 세월 저편으로 흘러가 버렸다. 하늘의 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