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햇살이 가득했다 / 최봉숙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한파라도 닥칠 모양인가. 유리창에 성에가 희뿌옇다. 추위도 모르는지 우리 집 개구쟁이들은 밖에 나가겠다고 성화를 부렸다.
“엄마, 쪼금만 놀다 올게. 응? 엄마….”
“추워서 안 돼. 이따 점심 먹고 나가.”
말렸지만 세 살, 네 살의 꼬맹이들은 성가실 정도로 보챘다. 견디다 못해 멀리 가지 말라고 당부한 후 내보냈다. 햇살도 퍼지기 전이라 바람살이 차가웠다. 형제가 늘 감기를 달고 사는지라 데려오려고 나서던 참인데, 옆집 아이가 현관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 아줌마! 크, 큰일 났어요. 애기가 물에 빠졌어요.”
“물에 빠지다니? 어디서 넘어졌니?”
“그… 그게 아니라 저기 저 큰물에 빠졌어요.”
순간, 도로 건너 하천이 생각났다. 악취가 심해서 근처에만 가도 얼굴이 찡그려지는 곳, 생활하수와 공장의 폐수가 모여드는 웅덩이다. 수심이 깊어 누구든 빠지면 살아나오기 힘들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엄마, 애기가, 물에… 물에….”
뒤이어 뛰어 들어온 큰애가 말을 잊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야트막한 가시철망이 둘러쳐 있고 ‘위험’이라고 쓴 팻말이 군데군데 붙어 있는 하천, 평소에도 그곳에 가면 안 된다고 형제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키던 곳이다.
집 밖에 나간 우리 애들은 골목에서 동네 형들을 만났던 모양이다. 악동들은 하천 둑으로 몰려갔고 물속에 돌을 던지며 놀았다든가. 그런데 까치발을 들고 구경하던 둘째가 중심을 못 잡고 철조망 너머로 떨어졌다고 했다. 나는 황급히 하천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발은 마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혹시 물에 빠진 아이 봤나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중 한 사람이 아래위로 쓱 훑어보며 말했다.
“아이 엄마요? 걔 죽었어요. 어떤 사람이 건지긴 했는데…. 거, 울지도 못하던데.”
“혹시 어디로 갔는지는 아세요?”
“그건 나도 모르죠.”
말을 마친 그는 휭하니 가버렸다.
혼이 나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무작정 차도로 뛰어나갔다.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미친 듯 손을 흔들었다. 수많은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택시 한 대가 와서 섰다.
“어디로 모실까요?”
생명이 위태로운 아일 데리고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주세요. 빨리요.”
눈앞에 병원이 보였다. 기사에게 던지듯 요금을 내고 차가 멈추기 무섭게 뛰어내렸다.
“아줌마, 잔돈이 남는데….”
기사의 말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내뛰었다. 출입문을 밀치고 들어서는데 끊길 듯 이어지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단박에 우리 둘째라는 것을 알았다. 숨은 붙어 있구나 싶으니 무릎이 꺾였다. 대기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실내에 웅기중기 서 있는 서너 명의 청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소낙비라도 두들겨 맞은 듯 흠뻑 젖은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서 시궁창에서나 날 법한 역한 냄새가 났다. 한눈에 봐도 둘째를 건져낸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청년에게 수없이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청년은 이를 딱딱거리면서도 진료실을 가리켰다. 아이한테나 어서 가보라는 듯.
대형 석유난로 두 개가 켜 있는 진료실은 후끈했다. 발가벗겨진 둘째가 병상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반소매 차림의 의료진 4명이 아이의 팔다리를 잡고 마사지하는 게 보였다. 미약하게나마 아이의 가슴이 오르내렸다. 평소 둘째는 낯가림이 심했다. 낯설다 싶으면 눈도 안 마주치던 아이가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다. 시간은 더디게 갔고 둘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빠짝빠짝 애가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숨기척도 내지 못하고 지켜보던 순간, 고대하던 아이의 울음이 터졌다.
“아… 아앙… 엄마… 엄마….”
시커먼 오수를 토해 내며 엄마를 불렀다. 안도와 감사함으로 가슴이 뻐근했다. 그제야 흠씬 젖은 청년이 생각났다. 진료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대기실에는 역한 악취만 남아 있었다. 선걸음에 출입문을 열고 나갔지만 청년들은 없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그들의 그림자 한 조각 보이지 않았다. 은인이 떠난 거리에 12월의 말간 햇살이 내리비추고 있었다.
<에세이문학 202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