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에는 이름이 있다.
사람의 발길에 짓밟히는 길섶의 질경이에서부터 여름 황혼녘에 먼지처럼 나는 하루살이와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은 물론, 크고 작은 수많은 산봉우리, 사람이 살지 않는 외로운 섬들, 깊은 밤하늘의 별떨기와 같은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에는 이름이 있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그런데 사람에게 이름이 없다니-!
나는 젊어서 사방사업 현장주임 노릇을 한 적이 있다. 민둥산에 수풀과 나무를 심는 일인데 인근 두메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일을 했다. 그 출력 인부의 노임을 주기 위해서 사역 부를 작성할 때 주민등록증을 대조하면서 이름 없는 사람을 더러 발견했다.
남자의 경우에는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여자들, 특히 나이든 노인에게서 이름이 없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여자들의 이름은 대개 무성의하게 작명(作名)되어 있었다. 좀 잘 지었다는 이름도 대개 끝에 아들자(子)자를 붙여서 영자니, 순자니, 복자니 하는 아들을 바랜 심정을 솔직하게 들어낸 이름들이 많았다. 또 언년이니 섭섭이니 끝예니 하는, 산고가 끝나고 고고한 울음소리가 울린 안방 산모 곁에서 시어머니가 가랑이 사이가 밋밋한 갓난것을 들여다보고 서운한 나머지 한 말이 그냥 이름이 된 경우도 많았다.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질서를 지배하던 유교적 시대상이 잘 반영된 여자의 이름들이다. 그래도 천하든지 말든지 이름 두 자를 얻은 여자들은 존재를 인정받은 것이라 다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제 이름도 없는 여자들도 있었다. 박씨니 김씨니 홍씨니 하는 성씨 밑에 그냥 씨 자만 붙어 있는 여자들, 대개 살날이 조만간 끝날 노인들 중에서 가끔 눈에 띄었는데 바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죄로 길섶의 질경이처럼 한평생을 살았을 그 분의 생애가 눈에 선해서 일을 시키기가 죄송할 따름이었다.
면사무소 호적서기 말에 의하면 그런 이름의 내력은 왜정시대에 호적을 처음 만들며 이름이 없는 여자들을 호적 서기가 사무 편의적으로 적어 넣은 것이라고 한다. 남에 이름을 함부로 적어 넣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란으로 둘 수도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성씨 밑에 씨자만 적어 넣은 것이다. 그걸 호적서기의 무성의라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것은 유교적 관례였다. 묘비에도 보면 비록 정경부인이라 할지라도 여자는 '貞敬夫人 延安 李氏之墓'라고 성 밑에 씨 자만 적혀 있는 반면 남자의 경우에는 '領議政 鄭公 一善之墓'라고 벼슬 아래 분명히 이름이 적혀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존재의 분명함에 따라서 그 이름은 빛났고, 그래서 존재를 확립하라고 사주팔자를 따져서 이름을 성의껏 지었다. 이름은 돌림자와 성을 제외하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것은 한 자에 불과하다.
내 이름 목성균(睦誠均)을 아는 사람은 나 말고는 가족과 일가친척, 몇몇 친구, 몇몇 문우(文友)들뿐이다. 그 이상 더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 걸 나는 바라지 않는다. 유명해지는 건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소심한 나를 불편케 한다. 나를 기억하는 몇몇 분들이 아니면 나는 사실상 이름이 없어도 크게 불편을 느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을 위해서 나는 내 이름을 소중하게 간수해야 할 의무를 느낄 뿐이다.
목성균(睦誠均), 부르기도 좋고 글 뜻도 보기 좋다. 우리 아버님이 내 이름을 참 잘 지어 주셨다. 그러나 나는 작명의 의미에 대해서는 모른다. 내가 명성 있는 존재가 되었다면 아버님은 내 이름자에 대해서 무슨 말씀을 해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럴 때 나는 공연히 몸이 달아서 이름값을 하려고 분발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성씨인 화목할 목(睦)자와 돌림자인 고를 균(均)자는 족보(族譜)상에 정해져 있는 글자니 만큼 다시 언급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가운데 글자인 정성 성(誠)자에는 자식에 대한 아버님의 간절한 소망이 깃들인 글자다. 부모로서 최초에 자식한테 건 기대, 작명(作名)의 공덕을 아버님은 얼마나 피력하고 싶으셨을까.
아버님은 그런 날을 기대하시며 나를 지켜보셨을 것이다. 누가 ‘아비보다 자식이 더 났다’고 하면 흡족해서 ‘음, 이름 값은 하는 편이지-!’ 아버님은 늘 그 말씀을 한 번 해보고 싶으셨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아버님의 꿈이었을 뿐, 이름을 헛되이 한 존재의 가벼움만을 나는 아버님께 보여 드렸다. 따라서 아버님은 그 말씀을 해보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채 돌아가셨다.
나는 성 밑에 씨 자만 붙은 사방사업을 하던 두메의 이름 없는 안 노인네만치도 삶을 천착(穿鑿)치 못했다. 너는 이름만큼 성의(誠意)껏 살았느냐? 내 이름의 가운데 자인 정성 성(誠)자가 가혹하게 내게 힐문(詰問)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