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거 아니?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래.” 일본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만든 3부작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에 나오는 대사다. 벚꽃이 흩날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서정적인 풍경들, 아릿아릿한 첫사랑의 감정, 사소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성적인 대화들,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는 설정들이 참 아름다운 영화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실제로 초속 몇 센티미터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시계로 재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벚꽃이 땅으로 내려앉는 속도가 수치화되는 순간, 우리는 가벼운 전율 같은 걸 느끼게 된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할 틈도 주지 않고 ‘초속 5센티미터’라는 말이 우리 머릿속을 지배한다. 감성의 힘이다. 이 감성적인 정보는 화려하게 만개한 벚꽃만 쫓던 우리에게 낙화도 아름답다는 깨달음을 선사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잠깐이나마 속도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해준다.
시속 100킬로미터에 비해 초속 5센티미터는 얼마나 미약하고 보잘것없는가. 하지만 벚꽃이 지는 날, 허공에서 떨어지는 꽃잎의 속도를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그동안 과속하면서 달려온 삶이 들어다보일지도 모른다. 김선우 시인은 “여기까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왔지만 / 여기서부터 나는 시속 1센티미터로 사라질 테다”라고 <마흔>이라는 시에서 쓴 적이 있다. 우리도 서서히 브레이크 좀 밟자. 속도를 줄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천천히 가야 꽃도 개미도 보인다.
시 창작의 기초를 공부하는 시간에 내는 과제가 있다. 멸치나 북어를 5시간 이상 들여다보고 그것을 묘사하는 시를 한 편씩 제출하기.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첫 번째 관문이 묘사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겉을 자세히 알아야 속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법이니까. 대상을 잘 묘사하기 위해 관찰은 필수다. 보통은 학생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5시간이나 투자해서 뭐 건질 게 있나 하는 표정들이다.
학생들이 제출한 시를 보면 대상을 얼마나 집중해서 들여다봤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멸치나 북어를 채 10분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이 태반이다. 꿰뚫듯이 오래 바라보지 않고 선입견으로 이해한 학생들은 곧 들통이 난다. 오래 들여다봐야 시가 생긴다는 걸 모르는 바보 같은 놈들! 그런 한심한 관찰자는 호되게 잔소리를 듣게 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연애는 상대를 자세히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가능한 한 많은 시간 상대방을 탐색하는 데 소비해야 한다. 연애는 사람의 일이므로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배경까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 사람의 지갑과 친구도 철저하게 검증해봐야 한다. 다만 호들갑 떨지 말고 소리 나지 않게.
이즈음 젊은이들의 연애는 쉽게 만나고 쉽게 깨지는 게 유행이다. 그럼에도 헤어지기 전후 엄살은 더 심하다. 젊은이들아, 연애에 실패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마라. 제발 너희만 아파라. 연애의 기술이 부족했던 자신만을 탓해라.
이사를 할 때마다 책 때문에 골치다. 아까워 버릴 수도 없고, 갖고 있자니 짐이 된다. 방도 책꽂이도 모두 비좁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도 있고 두어 페이지 설렁설렁 넘겨보다가 던져둔 책도 있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내가 아직 책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책 읽기의 완성은 그 책을 미련 없이 버릴 때 이뤄지는 것일까?
고등학교 다닐 때 대구의 남산동 헌책방에 쭈그려 앉아 몇 시간씩 낡은 책을 뒤적일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현대사를 헌책방에서 배웠고, 하늘처럼 떠받들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왜 문제 많은 독재자인지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일반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시집들도 수북하였다. 나는 용돈을 쪼개 그중 몇 권을 샀는데, 놀랍게도 저자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시인이 역시 당대에 이름 높은 한 시인에게 증정한 시집이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시집을 보낸 시인이 알면 얼마나 낙담하겠어. 증정 받은 시집을 소중히 간직하지 못하고 버린 시인이 그때는 얄미웠다.
1936년에 나온 백석의 시집 《사슴》은 100부 한정판이었다. 지금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은 다섯 손가락 안팎이다. 일설에 따르면 5억 원을 줘도 팔지 않겠다는 이가 있었다고 한다. 작은 꿈이 있다면 그 시집을 손으로 한 번 만져보는 것이다. 오래 바라보고 한 번 만져보는 데도 돈이 든다면 빚을 내서라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 너무 큰 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