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귤 / 이어령
수술을 받기위해서 어머니는 서울로 가셨다. 이른바 대동아 전쟁이 한창 고비였던 때라 마취제도 변변히 없는 가운데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 경황에서도 어머니는 나에게 예쁜 필통과 귤을 보내주셨다. 필통은 입원 전에 손수 사신 것이지만, 귤은 병문안 온 손님들이 어렵게 구해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귀한 것이라고 머리맡에 놓고 보시다가 끝내 잡숫지 않으시고 나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그 노란귤과 함께 어머니는 하얀 상자속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물론 그 귤은 어머니도 나도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그것은 먹는 열매가 아니다. 그 둥근 열매는 사랑의 태양이었고 그리움의 달이었다. 그 향기로운 몇 알의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혀졌다.
서울로 떠나시던 마지막 날, 어머니는 나보고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열 한 살이었으니까 이젠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성장한 것이다. 정말 다리가 아프셔서 그러셨는지, 혹은 막내라고 늘 걸려하셨는데 그 만큼 자란 것을 확인하고 싶으셔서 그러셨는지, 혹은 내손을 가까이 느끼며 마지막 작별을 하려고 하신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왜 그랬던가. 나는 어머니에게 숙제를 해야 한다고 꾀를 부리고는 제대로 다리를 주물러 드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나는 어머니의 신병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정말 마지막인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더러 산소에 갈 때 귤을 산다. 홍동백서에는 지정되어있지 않은 색깔이지만 제상에다가 귤을 고인다.
그리고 귤을 살 때마다 나는 귤 값이 너무 싼 것에 대해서 절망을 한다. 분노를 한다. 어머니가 머리맡에 놓고 가신 그 귤은 지폐 몇 장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이제 어디가 그 귤을 구할 이며, 내 이제 어디가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