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van Gogh
/  sunflowers
 
 Two Cut Sunflowers
 
 
     반고흐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금방 해바라기를 생각할 것이다.
     이 유명한 그림의 복사판은 미술관은 말할 필요도 없고 포스터나
     기념품 가게 어디에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심지어 학교나 공장, 스포츠 클럽의 간이식당에도 걸려 있을 뿐 아니라
     개인집의 벽면들도 이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그림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너무나 친숙해서 아무도 이 그림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화가가 이 그림을
     그렸고 또 화가에게 해바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등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화가로서 활동한 짧은 기간 동안 반 고흐는 열 한 점의 해바라기를 그렸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는 1887년에 그려진 자그마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
     이그림의 해바라기는 우리가 다른 그림에서 익히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불타는 듯한 강렬한 색깔이나
     춤추는 듯한 모습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색을 배경으로 한 거의 시든 해바라기가 그려저 있다.
     반 고흐는 열심히 실험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해바라기의 조형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요람을 흔드는 여인>, 1889, 캔버스에 유채,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요람을 흔드는 여인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룰랭 부인의 그림은 몇 년 전부터 반 고흐 미술관에 걸려 있다.
     이 그림은 원래 세 폭짜리 그림의 일부로 계획되었다.
     어느 편지에서 반 고흐는 조그만 스케치를 곁들이면서
     전체를 어떻게 구상했던가를 밝히고 있다.
     이 초상화의 양쪽에 해바라기를 넣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문제가 생겼다.
     그 시기에는 해바라기가 아직 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반 고흐는 작품의 양쪽 날개에 사용할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고갱을 위해 이미 그려놓았던 해바라기 그림을 자신이 그릴 그림에 맞게 복사하였다.
     반 고흐 미술관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해바라기가 있는 꽃병>은
     본래 양쪽 날개 그림 중의 하나이다.
 
 
 
 Two Cut Sunflowers
 
 
 
 
 
 
 Two Cut Sunflowers
 
 
 
 
 
 
 Four Cut Sunflowers
 
 
 
     좀 거친 유화스케치는
     오늘날 오털로 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보는 것처럼
     좀 큰 규모의 작품으로 발전하였다.
     이 그림의 가장 오른쪽에는 꽃 부분을 땅쪽으로 향하고 있는 해바라기가 있는데,
     반 고흐는 이것을 그리려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였다.
     그 옆에는 꽃송이가 우리쪽을 향하고 있는 세 송이의 해바라기가 있고,
     이것의 가장자리는 활짝 핀 꽃잎이 에워싸고 있다.
     서로 대조되는 색깔의 배합으로 인해
     이 그림은 강한 시각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반 고흐가 파리에 갔을 즈음에도
     꽃을 소재로 한 정물화는 회화의 한 장르로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류의 정물화는
     반 고흐에 의해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극적인 특징을 갖게 되었다.
 
 
 
     반 고흐는
     1886년 봄에 파리에 가서 그해 11월에 폴 고갱을 만났다.
     폴 고갱은 미술에 전념하기 위해
     잘 나가던 사업가로서의 길을 얼마 전에 포기한 터였다.
     또가까운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당한 명망을 얻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참내기인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반해버렸다.
     그중에서도 두 편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그것을 자신의 작품과 맞바꾸기도 하였다.
     그 사이 남불의 아를에 정착한 반 고흐는
     1888년 8월 내내 고갱이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였다.
     그는 고갱을 호흡과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고 생각하여
      그와 더불어 일종의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고갱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다가
     그의 방을 그림으로 꾸미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아를의 들판에는 해바라기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네 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고
     그중에서도 두 점이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마치 부케로 환영이라도 하듯 이 그림을 벽에 걸었다.
     이 두 그림은 현재 뮌헨에 있는 노이에 피나코택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Still Life: Vase with Five Sunflowers  
 
 
 
 
 
 
 Still Life: Vase with Fifteen Sunflowers
 
 
 
 
 
 
 Still Life: Vase with Twelve Sunflowers
 
 
 
 
 
 
Still Life: Vase with Fifteen Sunflowers 
 
 
 
 
 
 
 Still Life: Vase with Fifteen Sunflowers
 
 
 
 
 
 
 Three Sunflowers in a Vase
 
 
 
 
 
 
Still Life: Vase with Twelve Sunflowers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반 고흐>,
1888, 캔버스에 유채,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고갱은 아를에 머무는 동안 반 고흐의 초상화를 한 점 그렸다.

            반 고흐는 이 초상화를 형편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그림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이 정신병자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고갱이 어떻게 자신의 동료를 그렸고

            또 왜 그를 해바라기의 화가로서 그림에 담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의 작품이 대량으로 복제되기 훨씬 이전부터

            반 고흐는 이미 해바라기의 화가로 간주되고 있었다.
            반 고흐를 해바라기와 연결시키는 것은 고갱에게도 이미 하나의 기정사실이었던 것이다.

 

 

 

 

리차드 롤랑드 홀스트는

반 고흐의 최초 전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카탈로그의 표지에

시들어 구불어진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이는 예술가로서의 고흐의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1890년 반 고흐가 죽자 사람들은 그의 무덤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2년 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그의 작품만을 위한 전시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네덜란드 화가인 리차드 롤랑드 홀스트는

     이 전시회 카탈로그를 만들면서 의미심장한 표지를 디자인 하였다.

     그의 목판화는 굽어진 목 부분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후광을 가진 해바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비극적 그림은 반 고흐의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간결하면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상징하고 있다.

     즉 수직상승하는 식으로 급선장하고난 후  급격히 시들어가는 해바라기의 모습이

     이 예술가의 생애와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자료출처 - <열린 미술관 -- 헹크 판 오스 지음..> (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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