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계를 넘어 확장하고 변주한 미주작가의 글쓰기
『작가라는 이름으로』 (작가 2024) 박인애 외 7인
성민희
몇 주간 동안 『작가라는 이름으로』라는 수필집을 읽으며 미주 7인의 수필가와 여정을 함께 했다. 그들의 의식과 감각이 흐르는 대로 따라다니며 60여 년 전의 고향땅은 물론 페루에도 가보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삶도 들여다보는 행운을 누렸다. 수필지도 및 편집총괄을 맡은 박인애는 ‘일곱 색깔로 조화롭게 간격을 나눠 거대한 띠를 이룬 것만으로도 신비해서 가슴 설레는 무지개처럼, 결이 다른 우리의 이야기도 그런 감동을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책을 낸 의의를 밝혔다.
디아스포라 작가, 특히 미주수필가는 모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서 글을 쓰며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을 형성한다. 모국의 전통을 확장하거나 변주하면서 미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두 문화의 경계에서 독특한 그들만의 글쓰기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들의 글쓰기는 모국에서 가져온 기존 의식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 새로운 환경을 통해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행위다. 그것은 단순한 창작 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떠돌던 말을 끌어당겨 가뭇없이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기억의 순간, 상황, 사건, 사람 등을 글로 남긴다는 김추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문장과 문장 사이에 눌러 담은 본인의 진심이 전해지고 공감을 준다면 바랄 것이 없다는 박인애, 글은 살아있는 것이라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세하게 흔들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돌기가 나오고 자라 전혀 새 글이 되기도 한다는 백경혜,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와 소통하고자 수필에 삶을 담았다는 이지원, 단 한 문장이어도 좋으니 누군가의 가슴에 남을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싶다는 전명혜, 각자 자신이 지나온 삶을 나누고 공감했던 문우들이 있었기에 작품집이 나왔다며 더욱 정진해서 글을 쓰겠다는 각오를 하는 정만진, 자신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 밭에 떨어져 넉넉한 열매를 맺는 생명의 꽃으로 피어나면 좋겠다는 정은희.
일곱 작가의 머리말에서, 이들의 수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쳐 지나는 순간을 붙든 개인적인 기록을 넘어 삶의 굴곡 속에서 건져 올린 진실을 한 줄기 실로 꿰어낸 고백의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와의 소통을 향한 의지는 물론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와 함께 공명하며 더 큰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자부심도 읽을 수 있었다.
기억의 잔상에서 도출된 보편적 사유
디아스포라 작가에게 있어서 노스탈지아는 그들의 삶과 글쓰기에서 중요한 감정적 축이자 문학적 동력이 된다. 미국과 한국의 물리적, 정서적 거리감에서 비롯된 이 감정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흔히들 모국은 이상화되거나 낭만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잃어버린 낙원이나 치유의 공간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김추산과 박인애는 향수를 단순히 개인적 감정으로 처리하지 않고 보편적이고 문학적인 사유로 승화시켰다. 김추산은 <신풍종묘사>에서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야생화처럼 돌보는 이 없어도 꽃 피우고 열매 맺던 아버지’와 그의 사업체인 종묘사를 그리며 아버지에게서 자신에게로, 자신에게서 자녀에게로, 후대로 흘러가는 생명의 순환 고리로 씨앗을 환치함으로써 우주와 생명은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 속에 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잘 이끌어내었다. 박인애는 <조우>에서 비를 감지하고 앓는 어머니의 신음에 핀잔을 주던 사춘기 때의 자신을 후회하며 ‘불효의 손바닥 구름이 난데없는 소나기로 변해 퍼붓는다’고 했다. 자연 현상의 비유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줌으로써 어머니를 그리는 감정을 효도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도(道)에까지 잘 승화시켰다. 김추산과 박인애는 시간과 거리로 인해 파편화되고 희미해진 모국에서의 기억을 소환하여 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문학적인 창의성을 잘 발휘하는데 까지 도달했다.
인간관계의 다문화적 시각과 문학의 확장
현대사회는 글로벌화와 다문화화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의 관계 형성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주의 작가는 한 식구인데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손자, 손녀 등 세대와 역할에 따라 문화적 배경과 가치관이 다양하다. 그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감성적 공동체인 한국의 가족관계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문학적 소재로도 흥미롭다. 개인의 정체성, 소속감, 그리고 상호작용 방식을 재조명하여 그것이 문학 작품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다문화적 사회에서 가족관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리라고 본다. 전명혜는 <화가를 꿈꾸며>에서 가구나 그림의 위치를 한번 정하면 바꾸지 않는 자신과 자유분방한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딸과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과거를 후회한다. 미술에 재능을 보인 딸을 기어이 과학자로 키워낸 자신을 돌아보며 ‘전통적인 잣대로 딸의 자유로운 영혼에 사방으로 네모난 금을 그어 놓아’ 미국의 자유로운 문화 속에 사는 아이를 답답하게 만든 엄마 때문에 딸은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았을 수도 있었다.’며 마음 아파한다. 정은희는 <첫아들>에서 ‘자궁 양수의 바다에서 밀려나오느라 힘들었을 아기’를 바라보고는 전율하며 울었다고 했다. 그 축복의 아들이 미국 생활에 무지한 엄마 때문에 썸머스쿨에서 저녁을 굶기도 하고 밀가루(flour)를 꽃(flower)으로 발음하여 ‘미련한 어미로 인해 무더운 여름날’ 생고생을 하기도 했다. 전명혜와 정은희 두 작가는 모국과 타국의 문화적 충돌에서 비롯된 착오의 경험을 단순한 혼란과 좌절로만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간극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모색하며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며 승화시킨 것이다. 세대 차이와 문화적인 이질성이 빚어낸 갈등을 오히려 내면 성찰의 계기로 만들어, 타국의 삶과 모국의 기억이 교차하는 서사 속에서 그 경계를 허물고 확장된 정체성을 잘 탄생시킨 셈이다. 이로써 위의 작품들은 디아스포라가 극복해야 할 문화적 상실을 넘어 경계인으로서의 존재를 문학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진리
수필이란 개인의 특이한 경험을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주제와 사유를 도출하는 글쓰기다. 아무리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건 사이에서는 미묘한 감정의 그림자가 발생한다. 그 감정의 흐름을 성찰과 깊은 관조로 담금질한 후 진솔하게 토해내는 것이 수필이고, 그런 벌거벗은 고백의 수필이라야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 백경혜는 ‘절친했던 사람이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첫 문장으로 <백련사 가는 길>의 주제를 먼저 선명하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다산과 혜장 선사와의 ‘스승과 제자이자 둘도 없는 친구’라는 예를 들며 불편한 인간관계는 과감히 끊어 내라는 삭막한 현대의 인간 관계론을 거절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친구와 산도 넘고 물도 건너고 싶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현대인의 인간관계에 대한 안목을 긍정으로 마무리 한 것이다. 또한 <필모그래피>에서는 이민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의 풍경을 그려내며 ‘당장 내 인생만 가지고도 꽤 흥미로운 몇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옷가게의 사장이기도 하고 부모이며 자식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신의 ‘인생은 영화보다 길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장르가 바뀌어간다’며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주인공으로 살아가면서 앞으로 어떤 장르를 찍게 될까하는 기대로 글을 맺는다. 이지원은 <시각의 차이>에서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고 나서 ‘나답게 사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시각이 다르더라도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것에 자유가 있고 사랑이 쌓인다며 ‘자신을 사랑하고 용기를 내어 행동’하며 자유를 누리겠다고 한다. 백경혜와 이지원은 언어 구사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일상에 대한 의미 구현 능력이 탁월하여 이들의 글은 독자의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 예술의 본질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환기하고 내면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있다. 글을 읽은 후 독자의 마음에 따뜻한 감동과 새로운 다짐이 생긴다면, 그 글은 예술이 지닌 본연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실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위의 작품은 예술적 깊이를 온전히 구현하며 문학적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기지와 위트, 풍자가 주는 쾌락
수필은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여 독자에게 감동과 깨달음, 문학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문학 장르다. 소설이나 철학서보다 글이 짧고 간결하지만 때로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글에 유머나 위트, 풍자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으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 시킬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오락적 기능으로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을 넘어 인간적 교감과 철학적 성찰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쓰기의 기교는 무거운 주제도 부담 없이 전달할 수 있게 도와주고 감정적으로 친밀감을 형성해주어 수필의 가독성을 높이기도 한다. 박인애의 <고구와 구마>는 제목부터 위트가 넘쳐 눈을 끌어당겼다. 한국의 호텔에서 척추 수술 후 회복의 시간을 외로이 보내고 있을 때 지인이 보내준 고구마 이야기다. 그녀는 ‘모두 쪄먹고 두 개가 남았는데 깜빡하는 바람에 마르고 싹이 난 뒤 발견했다’며 두 고구마를 ‘고구와 구마’로 부르며 마치 애완견을 키우듯 소중하게 다룬다. 고구와 구마는 작가의 울음을 더 많이 보고 자라 마음이 많이 아팠을 거라며 안쓰러워하기도 한다. 미국으로 오는 날, 잘 길러주겠다는 지인의 카페 앞에 행여 추운데 얼어 죽을까봐 쓰레기봉투를 겹겹이 싼 고구와 구마를 내려놓았다. 깜깜한 새벽 빌딩 숲 속에 편지까지 써 붙인 모습을 본 동생이 한마디 했다. “와! 씨바, 존나 감동스럽다.” ‘분명히 욕인데 동생 목소리도 젖어있었다’로 글을 맺는다. 일상 가운데에서 들었다면 눈살이 찌푸려질 욕이 이 글 속에서는 찬물이 끼얹어 진 듯 시원하고 신선하다. 위트의 적절한 배치, 언어의 적절한 운용이 아닐 수 없다. 정만진은 <새장골의 여름>에서 독자를 1960년대 초반, ‘동네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주던 1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는 동네의 개구쟁이 시절로 데리고 간다. 삼태기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유리조각이나 금속조각에 발바닥에 상처를 입기도 하던 무더운 여름. 어느 과수원에서 서리를 하던 중 ‘주인한테 잡혀 치도곤’을 당하며 그들은 반성은커녕 ‘황당한 복수’를 다짐한다. 장례식에서 상여를 떠메고 가는 젊은이를 떠올린 꼬마들은 ‘우리는 나중에 과수원 아저씨가 죽어도 절대로 상여를 매주지 말자고 다짐하곤 했다’ 푸하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짧은 문장 하나가 글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나머지 글을 끝까지 미소를 띤 채 읽게 만들었다.
수필은 작가가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거는 교술적 형식이기에 필연적으로 개인의 내면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적절한 윤리적 가면을 쓰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솔직한 노출이야말로 독자와의 거리감을 좁히고 진정한 친밀감을 형성한다. 여기에 유머와 위트가 더해지면 글은 한층 더 살아 숨 쉬게 된다. 웃음은 독자와의 경계를 허물고 날카로운 통찰을 부드럽게 전달한다. 글 속에서 작가의 페르소나를 과감히 내려놓고 날것 그대로의 자아를 드러낼 때 문장은 더욱 생생한 울림을 지니며 독자의 마음에 깊이 스며든다. 결국 가식 없는 진솔함과 적절한 유머야말로 좋은 수필을 탄생시키는 힘이 아닐까.
『작가라는 이름으로』는 뉴욕, 휴스턴, 시카고, 댈러스에 흩어져 살면서 ‘문학을 애인으로’ 삼았다는 공통된 열망으로 경계를 넘나들며 길을 찾은 7인의 서사다. 흩어진 별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빛나듯 이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문학에의 꿈을 키워온 것이다. 그들의 수필을 읽으며 이방인이 품은 고독과 성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들의 수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작가에게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붙잡는 닻이 될 것이며 독자에게는 마음의 쉼이 되고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7인의 수필가는 ‘무지개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글밭을 풍성하게 일궈낼 것이라 믿으며 제2, 제3의 『작가라는 이름으로』 가 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수필미학 2025. 봄호> <미주문학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