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씁쓸한 한류
오랜만에 친구 몇 명이 만났다. 예전에는 한국에 갈 때마다 만나 수다를 떨었지만 코로나 이 후로 보지 못했으니 거의 5년 만이었다. 사람이 한 순간에 늙는다더니. 몇 년 사이에 하얀 머리를 하고 나타난 친구도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너 얼굴이 그게 뭐니. 이번에 온 김에 점도 빼고 쌍까풀도하고. 얼굴 좀 손보고 가라.” 반갑다고 폴짝 거리던 한 친구가 불쑥 내뱉는 말에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주억주억 끄덕인다. 세월이 만지고 간 흔적에 순응만 하며 살아온 내 얼굴이 한심하다는 눈길이다. 요즘 세상에 그 모양으로 다니는 거는 게으르거나 남 신경 안 쓰고 사는 이기주의자라고 한다. 주거니 받거니 몇 번의 실랑이 끝에 D-day가 잡혔다. 쌍까풀을 비롯한 다른 수술은 절대로 안한다고 버틴 덕분에 피부과 시술만 받기로 했다. 얼굴 군데군데 지저분한 기미와 점을 빼기로 한 것이다. 병원도 정해졌다. 친구 남편인 소아과 닥터가 운영하는 병원이라고 했다. 피부과가 아니고 웬 소아과냐 했더니 잔말 말고 따라만 오란다.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친구를 따라간 곳은 강남의 큰 빌딩이었다. 층층이 병원 간판이 보이는데. 소아과는 3층이고 4층은 성형외과였다. 친구는 나를 데리고 4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니 입구부터 간판이 휘황찬란하다. 눈, 코, 입, 안면거상, 리프팅, 지방이식, 피부시술 등등. 심지어는 여자의 은밀한 곳까지 시술한다는 광고 배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버젓이 세워져있었다. 옛날에는 성형외과 한 곳에서 하던 성형수술이 세분화되어 각각 부위별로 전문의가 오피스를 운영할 뿐더러 산부인과까지 성형 분야에 합세했다. 알고 보니 소아과 닥터가 건물을 사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사람 몸의 어떤 부위도 원하는 대로 뜯어서 고쳐주는 성형외과 종합 빌딩을 만든 셈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은 홀 한 쪽에 길게 접수처가 있어, 여러 명의 아가씨들이 부지런히 컴퓨터와 계산기를 두드리며 예약을 해주고 수술비를 정산했다. 사방 벽은 모두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졌는데 각 부위별 상담실장이 고객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홀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각자 자기 환자를 호명하여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모든 업무가 철저히 시스템화 되어 여러 전문병원이 한 병원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앉아있는데 잘 생긴 청년이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듯 carry-on 가방을 끈 중국 아가씨 세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중국말로 안내를 하는 모습이 단체 관광단을 몰고 다니는 가이드 같았다. 곧 이어 또 다른 그룹의 베트남 여자들이 들어왔다. 역시 여자 가이드의 유창한 베트남 말이 사무실 천정을 날아다녔다. 누가 환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인 부부도 한 쪽 모퉁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코 기브스를 하고 나오는 남자, 퉁퉁 부은 눈에 테이프를 붙인 여자, 무슨 성형을 얼마나 했는지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고 나오는 여자.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인 사람들을 보며 여긴 고쳐도, 덧대어도, 감아도, 그냥 ‘일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뜯어내고 다시 만들어가는 얼굴 속에 묘한 당당함까지 느껴졌다. 드라마와 K팝으로 대표되던 한류의 영역이 이제는 성형 분야로 확장된 것일까. 자랑스러웠던 문화의 물결, 한류(韓流)가 거세게 세계를 휩쓸던 때가 있었는데. 드라마 속 주인공의 대사에 설레고 K팝의 강렬한 리듬에 어깨를 들썩이던 시간.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의 경계를 넘어 마음을 엮어주던 그 뜨거운 기운은 분명 우리의 자부심이자 영광이었는데. 그 날 외국인이 줄지어 상담을 받고 수술을 기다리는 모습에 이제 한국이 '성형 전문 국가'가 되었나하는 딱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듯 얼굴의 특정 부위를 규격화된 방식으로 '시술'하는 풍경은 의사를 단순한 기술 노동자로 전락시킨 것 같다는 실망감도 들었다. 이전의 한류가 보여주던 감동과는 다른 종류의 느낌이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미용 시술이란 스스로를 가꾸고 변화시키는 행위일 뿐, 그것으로 하여 자신감을 얻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의사들이 본연의 역할인 ‘건강과 생명 존중’을 넘어 ‘미적 기준 충족’이라는 다소 좁은 영역에 매몰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한때 문화 콘텐츠로 세계를 매료시켰던 한류의 다음 장(場)이 '성형'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대치되면 어쩌나 씁쓸하기도 했다.
덕분에 요즘 햇볕을 피하느라 복면을 하고 다니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 날 흉을 보면서도 나는 결국 피부과 시술을 받고 왔다. <2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