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웨애앵~ 로봇청소기가 동그란 몸에 달린 세 개의 빗자루를 마구 흔들며 내 책상 쪽으로 오고 있다. 에구. 방문을 안 닫았구나. 안방에서 탈출을 했나보다. 온 몸을 신나게 나부대며 복도를 지나 내 방까지 왔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다. 요~ 귀여운 것. 톡톡 등을 두드려주며 덥석 안아들고 도로 안방에 갖다 넣는다. 만일 이것이 교감이 된다면 내가 얼마나 자기를 예뻐하는 줄 알텐데. 얘도 나를 무척 따르겠지. 아니, 어쩌면 나를 미워할 지도 몰라. 안방에만 가둬놓고 하루도 안 거르고 부려먹는다고. 그저 말없이 순종만 하는 이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네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세요.” 안내를 해 줘도 이 길은 내가 더 잘 알아. 하며 직진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턴 하세요. 유턴 하세요. 애타게 운전대에 매달리는 목소리. 기다려. 조금 더 가서 좌회전해도 돼. 내 고집에 그 야들한 목소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잠깐 조용해지더니 할 수 없다 포기한 듯, 조금만 더 직진하다가 좌회전 하세요. 한다. 열 번을 무시해도 스무 번을 무시해도 한결같은 목소리다. 얘가 만일 사람이라면 “나, 안 해.” 하며 뛰쳐나갈 지도 몰라. 하며 웃은 적이 있다. 앙탈을 부릴 만도 하건만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그것 역시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Her’가 생각난다.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로봇인 사만다는 인간의 형태도 갖추지 않고 생각도 없다. 아내를 잃고 외로움과 삶의 무의미함에 우울하던 테오도르는 그의 질문에 변함없는 톤으로 대답하는목소리와, 그가 조용할 때면 함께 침묵해 주는 그녀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사랑하게 된다.

  말이란 것이. 표현을 안 할 때에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누구든지 제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면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호불호(好不好)를 가질 계제가 없다. 친구 중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감정 표현을 안 하니 무미건조 그 자체다. 그런데도 그 친구에 대해 나쁘게 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십의 대상이 되는 적도 없다. 간혹 어중간한 상황일 때는 어부지리로 좋은 역할이 맡겨지기도 한다. 팬(fan)이 없는 반면 안티(anti)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일이다. 한국서 오신 문학평론가가 세미나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 날 말씀하셨다. “모든 문인이 이상하게 성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더군요. 왜 그렇죠?” 나는 웃었다. 존재감 없이 지내잖아요. 사람이랑 갈등을 만들 계기가 없었어요. 그 후 몇 년이 지나 나름대로 문단활동을 한 지금은 내게도 많은 안티가 생겼다. 의견을 말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말, 말, 말을 할 기회가 많아진 탓이다.

  고대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말했다. ‘모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다. 그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말없이 다시 안방에 갇히는 로봇청소기를 보면서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이 아침에 8월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