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수필의 디아스포라적 이미지와 특성
성민희
1. 미주 디아스포라 문학
고대 유대인과 난민의 이동으로 형성된 이전의 디아스포라는 강제 이주의 특성을 가졌다면, 현대의 디아스포라는 자기 발전과 도약을 위한 자발적인 이동이다. 그 이동이 자발적이라고 해도 정착하면서 겪어야하는 문화적 충돌과 정체성의 혼란을 피할 수는 없다. 이식된 땅에서의 그들은 영원한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미주 이민자는 소수자로서의 불이익과 아이덴티티 변화에 따른 불안과 긴장 속에서 미국 사회에 동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제거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과거의 흔적과 기억’이 계속해서 의식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혼란을 딛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지만 데비드 흄은 ‘나는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인간이란 생각과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비록 고국을 떠나왔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곳에서의 삶의 흔적은 무시할 수 없고 지울 수도 없다. 아래의 글은 미주문인의 글쓰기 저변에 깔린 개념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인간은 2차 의식을 갖고 있어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움 대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었으며, 말을 통해 공감된 사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격리(왕따)를 당하며 외로워지게 되었다. 외로움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인간은 글을 쓰게 되었으며 글을 쓰므로 행복감(카타르시스)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문학이다.⌟
-연규호, 《뇌신경 과학으로 본 마음과 문학의 세계》 (도훈, 2023)
미국 사회에는 ‘위대한 세대’라고 불리는 연령층이 있다. 1911년부터 1924년 사이에 태어나 1929년의 대공황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세대,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 전후 복구와 경제건설에 기여하여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세대를 지칭한 것이다. 이 용어는 미국의 유명 방송인 ‘탐 브로커Tom Brokaw’가 저술한 책 《The Greatest Generation》에서 따 온 말이다. 이 책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47명의 삶을 추적하여 쓴 내용으로, 평범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미국을 최강국으로 발돋움시켰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들은 미래의 미국을 위해 어떻게 살겠다는 각오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단지 겪어내어야 할 그 시대와 주어진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성실하게 견디며 살아내었을 뿐인데. 탐 브로커의 글을 통해 어느 날 그들은 미국 역사 가운데에 ‘위대한 세대’로 우뚝 선 것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문학과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며 미주의 작가들을 생각해 본다.
미주 이민 1세는 조국에서 뽑혀 온 뿌리가 이 땅의 흙을 움켜쥐고 온전히 몸을 세우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 비옥한 땅이든 척박한 땅이든 낯선 지역의 낯선 온도와 습도를 견디며 싹을 틔운다는 것은 엔간한 에너지와 인내 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다. 이러한 정신적 고뇌와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며 미주 동포들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경제적 자립도 했다.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고, 사회적인 안정을 이루어 현재는 어느 민족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미주 이민 1세대 또한 ‘위대한 세대’라고 지칭하지 않을 수 없다. 미주 이민의 ‘위대한 세대’와 세월을 함께한 미주작가는 동포 삶의 궤적을 글로 풀어내고 기록으로 남길 자료를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곧 이민생활의 경험을 공유한 미주 작가들만이 한인의 발자취를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미주 이민사의 생생한 역사를 엮는 동시에, 이민 2세들의 미래를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독특한 ‘이민문학’을 정립하여 ‘축약된 이민사’를 기술한다고 볼 수 있다.
수필은 원칙적으로 작가체험의 영역을 다루되, 철학이나 논리적인 사색을 담아 정화된 언어로 ‘나’가 주체가 되어 진술하는 글이다. “수필은 경험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글쓰기다. 기억은 기록을 통해 구체화하며, 해석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창조적 행위다. 기억과 해석으로 창조성을 발휘하므로 수필은 문학”(신재기,«수필학 강의»)이라고 했다. 미주 작가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기억 속에 남겨둔 채, 미국에서의 생소한 삶을 겪음으로 생긴 소외감, 두려움, 도전을 글로 표현한다. 잘못 끼워진 퍼즐 조각처럼 미국사회에 삐죽이 끼워진 상태에서도 견딜 수 없는 허기로 글을 쓰는 것이다. 주류사회 진출이 그리 활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활동 반경 또한 넓지 않은 이민 초기에는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모국을 향한 그리움과 회귀본능이 주요 테마가 되었다. 이민을 오게 된 사연, 역경을 딛고 이룬 아메리칸 드림 등을 기술한 글도 많았다. 간혹 이민생활의 어려움과 성취감, 문화적 충돌과 조화, 정체성의 탐색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긴 했지만 전문적인 수필창작 교육의 기회가 없었기에 자연이나 사건을 통해 얻는 간접적 소재에는 성찰이나 사유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에 미주 수필가로서, 불편한 언어, 인종차별과 문화 충격을 걷어낸 흔적이 있는 수필을 찾아 소개하고 더불어 미주 수필가의 정체성과 과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한다.
2. 공존하는 다문화와 상호작용의 수필
자기 갱신과 도전이 이루어 낸 아메리칸 드림 김문희는 작품 <잃어버린 가난>에서 “유학이라는 이름하에 태평양을 건너 낯 선 땅에 발붙이고 앞만 바라보며 뛰었다. 이민의 세월은 또 그렇게 흘렀다.”며 지난 20여 년의 미국 생활 동안 피나게 쌓아올린 결과로 현재는 방이 여섯 개나 되는 2층 집의 주인이 된 자신을 돌아보며 자족한다. <무작정 삶>에서 이주혁은 “건축자재가 없는데 설계도만 그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장 오늘 먹고 살아야했다.”며 결핍과 불가능을 극복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48년 간의 세월을 돌아본다. 막노동을 하면서도 약대를 졸업하여 약사가 됨으로써 노마드의 삶이 이룬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보여준다.
이민 1.5세와 2세의 좌충우돌 부모와 함께 이민을 온 청소년은 어른보다 빨리 습득한 언어로 온 가족의 통역사 노릇을 하며 어린 가장이 되어 가족을 이끄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리더는 아니지만 가정이라는 배의 선장 노릇을 하는 셈이다. 이민의 세월이 길어지며 이제 생생한 주류사회의 사회상을 그려주는 1.5세대가 수필문단에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회인이 된 이민 1.5세, 2세의 모습도 수필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우린 TV 드라마 속 마지막회의 주인공처럼 미국에 이민 왔다. 온 가족이 서로 도와가며 살았지만 그렇게 동경하던 이민 생활은 고단했다.(중략) 아빠의 권유로 대학교에 갔다. 두꺼운 칼리지 책은 첫 장부터 끝장까지 영어였다.(중략) 점점 내 지적 능력의 한계가 느껴지며, 자꾸만 초라해졌다.”라고 했다. <녀석이 자고 있다>에서 이리나는 여고를 갓 졸업하고, 온 가족의 이민에 얹혀 인생 전환을 한 이민 1.5세 사춘기의 고충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본인과는 달리 두 살도 안 된 조카를 보며 어른들이 다져 둔 옥토 위에서 고생을 겪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을 다음 세대를 축복한다.
“작년부터 우리 딸아이는 한 달에 3,000불 씩 받는 직장에 취직 되었다고 부모로부터 독립만세를 부르고 따로 나가서 살고 있다.(중략)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감이 잘 잡히지 않지만 통상 ‘집’이라고 하면 부모가 살고 있고 또 본인도 오랫동안 몸 담아왔던 본가(本家/home base)를 연상하는데. 미국 애들은 집을 나간 지 반년도 못되어 또 자기 소유도 아닌 그것도, 더구나 애비가 벌어오는 돈으로 세를 내는 주제에 임대한 아파트를 자기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다음부터는 ‘아빠 집’이냐 ‘내 집’이냐를 따져서 약속을 해야 하는데 어쩐지 서운한 점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원택은 <독 안에 든 쥐>에서 자식과의 문화 충돌을 위트로 잘 풀어내었다. 일찍이 김기림은 수필에서 유머는 향기이고 위트는 빛나는 보석이라고 했으며, 김광섭도 “수필은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의 흥미를 긴장시키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유머가 있어야겠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라며 유머와 위트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원택 수필의 특징은 곳곳에 유머와 위트를 장치하여 수필의 맛을 한층 높여 독자를 즐겁게 하는 데에 있다.
이질문화 속의 동질감 사람의 삶은 태어남과 죽음의 중간 지대를 사는 작업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지는 슬픔은 모든 인종이 동일하겠지만, 그것을 대하는 정서는 다르다. 강신용은 <낯 선 장례식>에서 한인들의 장례식은 침묵과 슬픔으로 무거운 반면, 미국인의 장례식은 마치 파티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죽음을 죽음 자체로만 보지 않는 미국인의 의식세계를 보고 죽음을 보는 시선을 바꾼다고 했다. 일명 자바시장(한인밀집 의류도매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신아는 <세상은 날마다 업그레이드>에서 옷의 디자인과 색상에 관한 취향은 다르지만 정서의 교감은 인종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며, “국적이 어디든 인간 고유의 희로애락은 동일하여 말이 통하지 않아도 화통한 웃음, 친근한 미소만으로도 스스러운 사이가 될 수 있다”는 따뜻한 경험을 말한다. 이봉희의 <그들과 나>는 구걸하는 사람에 이어 모래사장에서 잠을 청하는 흑인 청년을 보며 쓴 글이다. 이봉희의 호의를 완강히 뿌리치는 그들의 방어와 공격성은 바로 마지막으로 부려보는 자존심이라며 그 행동을 이해해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현실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그들과 주어진 삶을 살아가느라 허우적거리는 자신 중 과연 누가 더 행복한지 반문한다. 이정호의 <동성애>는 호기심으로 친구와 함께 게이클럽에 가 본 경험을 말한다. 미국은 2003년 매사추세츠 주를 시작으로 점차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기에 그 법제를 반대하는 서명운동 역시 활발하다. 이정호는 “동성결혼 허용의 법제화를 반대하는 율법적인 행위보다는 사랑으로 먼저 그들을 대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이 글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정호의 주관이다. 그의 주장이 과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윤리에 맞나 고개를 갸웃하다가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정의일까? 이 수필이 주는 메세지는 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고난도의 고민이기도 하다.
국제결혼 속의 톨레랑스 “내 맡은 일과 가족이나 잘 챙기고 살면 된다는 한국 여자와, 오십이 되도록 독신으로 지낸 미국 남자가 부부가 되었다.(중략)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절충을 통해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19년 째 살다보니 우리는 미국인이 되었다가 한국인이 되었다가 한다.” <오지랖도 닮나봐>에서 두 문화의 갈등과 화합은 이해와 배려로 극복되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정숙은 말한다. 서로의 불화를 ‘틀림(wrong)’이 아닌 ‘다름(different)’으로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톨레랑스’(Tolerance)가 아닌가. 마지막 부분에 도입한 오트밀과 누룽지의 대비가 글의 맛을 잘 살려주었다.
<펄펄 끓는다>에서 이현숙은 “한국인 올케는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히스패닉 시누이 앞에서 ‘No’를 내 뱉지도 삼키지도 못해 입 안이 펄펄 끓는다.”며 인종과 나라에 따라 문화차이가 있지만 ‘시’자에 대한 인식을 똑 같다며 푸념을 한다. 미국 속에서의 국제결혼은 만만하지 않지만, 인간 본능에서 기인한 정서는 같다는 것을 두 수필에서 읽는다. 다양한 문화 속에서도 ‘인간관계론’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결론이다.
디아스포라의 애통(哀痛) “작년 5월에 위험을 무릅쓰고 호텔에서 자가 격리 14일을 하면서까지 엄마를 보고 왔다.(중략) 예고 없이 갑자기 나타난 큰 딸이 반가웠고, 그리고 요양병원에 갇혀서 2년 가까이 시간을 외롭게 보내야만 했던 당신이 서러워서 일게다.” <그리움을 바라보는 추억만으로>에서 김카니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가족의 다급한 호출을 받고 한국으로 나갔다. 다녀온 지 두 달 후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삶은 견뎌야한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깨달았다.”라며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털고 딸의 가족과 함께 건강하게 살리라고 다짐한다. 송선주는 <임종>에서 “나는 시부모님도 친정 부모님도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다. 태평양을 건너오며 예견했지만, 이민자로 팍팍한 삶에 여유가 없었다.”며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모두의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회한과 상실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 앞에서는 세상에서의 인연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며, 자신 또한 떠나야하기에 그것을 잘 준비하자며 허전한 마음을 다독인다.
미주동포들은 한국에 두고 온 가족의 임종을 거의 보지 못한다. 부음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비싼 값을 치른 비행기를 타고 다녀온다. 어떤 사람은 위급 상황이라는 연락을 받고 임종을 보고자 달려 나갔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가시지 않자, 오래 체류할 수 없어 그냥 돌아오기도 한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음을 듣고 다시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장례식 참석을 포기한다. 이런 경우는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설움까지 보태어져 더 슬프다. 인륜지대사를 기족과 함께 치르지 못하는 아픔 또한 디아스포라의 애통(哀痛)이다.
Re-Tire Life 이민 역사가 120년을 넘어가며 이제 1세대는 거의 은퇴를 하거나 했다. 대부분의 문인 역시 경제적인 활동을 마무리 하며 은퇴 했기에 요즈음에는 노후 생활에 관한 수필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의 수필은 한결같이 지난했던 과거의 넋두리가 아닌, 은퇴 후의 평온과 풍요를 노래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시간과 물질, 재능을 봉사활동을 통하여 나누기도 한다. 병아리 같던 자녀가 이민 생활에 잘 적응하여 이제는 주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Korean-American이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뿌리를 더욱 깊고 넓게 펼치며 자라나는 손자, 손녀는 그들 이민 삶의 면류관이며 영광이기도 하다.
<내일의 나무를 심는다>에서 이희숙은 “자신의 삶이 후손에게 선한 영향으로 남을 거다”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그것은 본인이 얼마나 성실하고 열정적인 이민의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자긍심 넘치는 고백이기도 하다. “40년 간 열심히 일 했으니 이제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좋은 나.” 라며 김규련은 <5달러의 행복>에서 은퇴 후의 여유를 행복해한다. 병원에서는 유능한 간호사로, 가정에서는 자상하고 부지런한 아내, 엄마, 할머니로 살아왔던 삶이었기에 은퇴를 하고나서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한인을 위한 통역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나절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먹는 5달러짜리 햄버거는 값진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자신에게 주는 후한 보상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에서 김수영은 가장 기본적인 사람의 귀소본능을 말하지 않는다. 미주 동포들에게는 여기가 그들의 고향이기에 당연히 이 땅에 묻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단체로 묘지를 구입하여 전 교인이 한 곳에 장지를 마련하기도 한다. ‘Rose Hill’이라는 공원묘지에는 아예 동산 하나가 한인전용 장지처럼 되었다. 해마다 설날이나 추석에는 꽃다발과 제사 음식을 든 한인으로 동산이 울긋불긋 사람꽃으로 장식된다. 이민 역사가 깊어지며 한인의 살아가는 환경만 바뀐 게 아니라 죽음 후의 환경도 바뀌었다.
수필은 마음의 거울, 성찰의 전(殿) “글을 쓰는 작가치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아직은 글쓰기가 그저 좋고 행복하다. 내게도 진정한 삶의 질을 따지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박하영,<진정한 삶의 질>) / “아궁이에 한 줌 나무를 더 넣어주고 때론 불을 빼주는 것처럼 문장의 감각을 익혀 좋은 글을 쓰려며 세월이 한참 필요할 것 같다.”(정유환, <밥짓기와 글짓기>)/ “이제 수를 놓듯 수필을 쓴다. 한 땀 한 땀, 파릇파릇하게. 연서를 쓰듯”(엄영아,<수를 놓듯, 연서를 쓰듯>)
미주의 수필가는 글쓰기에 욕심이 없다. 명수필을 써서 허명을 날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공모전에서의 입상을 통한 성취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으려 노력하는 과정으로, ‘내면이 유리알처럼 맑다면 자연히 글도 맑아질 것이다’라는 자기 성찰의 완성으로 여긴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솥의 밥에 뜸을 들이듯’, ‘수틀에 끼워진 하얀 천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그렇게 정성으로 글을 쓸 뿐이다. 찰지고 기름기 좔좔 흐르는 밥을 짓기 위한 작업처럼 글짓기 역시 쫄깃쫄깃하고 맛나게 하기 위해서는 갈고 닦고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그들은 문학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 배우고 나누면서 한발 한발 경건한 신앙의 길을 걷듯 그렇게 글을 쓴다. 미주 수필가의 수필은 바로 그들 마음의 거울이고 성찰의 전(殿)이다.
3. 미주수필가의 자화상
인간은 저마다의 특성과 주장과 아집이 있지만, 서로 공감과 갈등을 융합하며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거주하고 있는 특정한 환경 속에서 상호 간의 소통과 사회생활을 통한 직간접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지역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에 미주한인들은 이민의 삶 가운데, 타인종과 미국사회 제도 속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갈등을 극복하며 나름대로 또 다른 미주 속의 ‘한인문화’를 만들어 간다. 그 과정에서 가장 극복이 어려운 부분이 언어의 운용이다.
몇 년 전이었다. 한국에서 스무 여 명의 문인들이 임헌영 교수님을 모시고 ‘동부인문학 기행’을 왔다. 마크 트웨인, 테네시 윌리암스를 비롯하여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미시시피강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여정에 미주수필가 몇 명이 합류했다. 유명 작가의 생가나 묘지 탐방 중에 현지 관리인의 설명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관리인이 모두 미국인이라, 그때마다 한국문인을 위한 통역을 미주문인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관리인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긴 하는데 한국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한국말로 하는 문인의 질문을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영어 단어도 떠오르지 않아 곤혹을 치렀다. 답답해하는 나의 손짓과 표정을 보던 한국문인이 오히려 단어를 가르쳐 주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당황스럽던 그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영어와 한글, 어느 것에도 풍성히 젖지 못한 채 한정된 단어만을 사용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암담함을 느꼈다.
살펴보면 디아스포라 문인은 어느 쪽 언어도 완전한 습득을 못한 채 어중간한 언어 구사를 할 수 밖에 없다. 탄생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체득한 모국어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필요에 의해 의식적으로 익힌 현지어 사이에 끼인 경계인으로서 모국어는 바래지고 현지어는 소화불량인 어정쩡한 상태다. 그러기에 어느 언어도 다양하고 세련된 어휘를 구사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모한 작업일 수도 있다. 해마다 조금씩 변하는 한글의 문법과 맞춤법, 띄어쓰기는 차치하고라도 의식의 방향과 흐름조차도 본국 문인과의 차이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국어란 무엇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난 언어이며 내 피와 가슴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언어가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던 언어. 나를 키워주고 다듬어준 언어이기에 아무리 이국땅에서 오래 살아도 절대로 소홀히 하거나 잊을 수는 없다. 아니 더욱 애착을 가지고 사랑한다. 때문에 미주 작가들은 변하는 문법을 열심히 배우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포맷의 글을 쓰려고 한국의 문법체계와 변화하는 글쓰기 트렌드를 기웃거린다.
4. 미주수필가의 역할과 다짐
수필문학이란 시나 소설과 달리 작가가 만나는 평범한 일상과 사람과 사물을 작가만의 시선으로 조명하고 거기에 사색과 사유를 얹어 기술하는 글이다. 작가 특유의 의사 표현인 동시에 현실과의 소통이고 개인 역사의 기록이다. 그러한 글을 미주의 수필가는 ‘이민사회’라는 특별한 환경 속에서 쓴다. 비록 조국을 떠나와서 살고 있지만, 정신과 육체 가운데 흐르고 있는 한국적인 정서를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풀어내는 것이다. 육체로 체험한 ‘이민정서’와 영혼 속에 흐르고 있는 ‘한국정서’를 아울러서 수필로 옮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그들은 이민 생활의 적나라한 삶이 뼛속에 각인되고 핏속에 녹아 있는, 무궁무진한 글쓰기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체득한 다양한 경험, 즉 자영업을 하면서, 회사를 경영하면서, 미국 직장 혹은 한국 직장에서 만나는 사건과 사람의 이야기는 비록 소소한 경험일지라도 미주이민 삶의 풍속도가 된다. 교포사회를 섬세하고 심도 있게 그린 풍경화가 된다. 미주한인의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도 된다. 그것은 흥미로운 이야기인 동시에 미국사회를 엿보는 간접경험의 기회도 될 수 있다.
미주문인의 특이한 경험과 의식으로 형성된 그것이 곧 ’디아스포라 문학’이 아닐까. 미주 수필 역사 25년을 거치며 배출된 많은 수필가들은 오늘도 가늠할 수 없이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곳곳에서 개인 수필집이 출간되고 동인지와 협회지가 발간되어 이민 역사를 쉴 새 없이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미주수필가는 자신의 글이 이 시대의 이민 역사 한 부분을 조명해보는데 보탬이 될 수 있기만 한다면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쓸 거다. 그들은 교포사회를 글로써 그리는 거울이자 성찰하는 사관(史官)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다민족, 다원주의 문화를 잘 버무린 수필이 미주문인만의 자족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한국 문학을 가꾸며 넓히는 역할을 감히 감당할 수 있기도 희망한다.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씨는 5년간의 투병 생활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다’는 허기였다고 했다. 자신은 작가가 아닌 환자라는 사실, 지친 육체와 황폐한 정신력으로는 도저히 글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가장 슬펐다고 했다. 작가로 죽고 싶지 환자로는 죽고 싶지 않다고 하는 말은 문학을 향한 열망을 전해준다. 그의 말처럼 미주수필가도 작가로 살고 싶지 단순한 이민자로만 살고 싶지 않다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글을 쓸 것이다. <끝>
수필비평 전문 계간지 «수필미학» 2024년 봄호 당선작
당선 소감
수필을 쓰면서 수필이론에 갈증을 느꼈다. 그것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여러 수필이론서와 비평문을 들여다보며 작품을 바르게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도 또 다른 수필문학의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수필의 주제를 더 확장시키고 격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수필이 문학의 영역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으려면 수준 있는 비평과 논쟁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에 수필비평의 문을 두드렸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선뜻 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의 비평이 수필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확하고 심도 있게 분석하여 의미의 재정립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디아스포라 수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tool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평론은 우선 미주수필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어깨가 많이 무거워진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껏, 최선을 다해서 미주 수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미주 수필가들의 많은 작품을 분석하고 평하셨네요. 미주 수필의 디아스포라적 이미지와 특성, 그리고 추구해야 할 길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