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우드 숲

 

성민희

 

 

 얇은 이불을 목 끝 까지 끌어당기며 으스스 추위에 뒤척이는 아침이다. 한 해도 이제 다 저물었나보다. 따뜻한 느낌이 좋은 계절, 해마다 이맘때면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미국에 첫 발을 디딘 후 서민 아파트에서 만난 이민 동기다. 그때의 우리는 겨우 돌을 지난 아기를 데리고 이민을 왔거나 유학, 혹은 지사 파견으로 나온 가정이었다. 80여 가구의 미국 사람이 사는 아파트에서 처음 한국인을 만났을 때의 놀람과 기쁨이라니. 1층에 한 가정, 2층에 두 가정, 3층에 한 가정, 모두 네 가정이나 되었다. 남편들이 학교로 직장으로 떠난 시간이면 한 집에 모여서 부침개를 부치고 수제비도 끓여 먹으며 향수를 달랬다.

 

 미국 생활에 익숙해 질 즈음 한국으로 타주로 흩어지더니 엘에이가 고향인양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모였다. 지사 파견 근무가 끝나 본국으로 나갔던 가정도 아이 교육 핑계로 돌아오고, 학위를 따고 교수 자리를 꿈꾸던 사람도 돌아왔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한국은 육체가 기억하는 고향이라면 청년기와 장년기를 보낸 엘에이는 영혼이 성장한 또 다른 고향이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이민 초년생으로서. 그렇게 우리는 서툰 걸음마를 함께 걷는 새댁이었다.

 

 이국땅에서 유난히 외로워지는 시기가 있다. 정월 초하루와 추수감사절이다. 그날은 모든 상점과 식당은 물론 맥도널드조차 영업을 하지 않는다. 거리는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적막강산이다. 멀리 떨어져있던 가족도 스윗홈을 찾아오는 날이라 가족이 없는 사람은 갈 곳도 음식을 사먹을 곳도 없다. 그 때 나를 제외한 세 가정은 부모 형제는 물론 먼 친척 한 사람 없이 너른 바다에 뚝 떨어진 섬과 같기에, 명절이면 오빠와 동생, 조카들로 북적이는 우리 집을 부러워했다. 덕분에 해마다 나는 두 번의 추수감사절 만찬 식탁을 차렸다. 한번은 우리 식구들. 다음날은 그 친구들.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아이들은 제 각각 가정을 꾸린 성인이 되었고 우리는 손자 손녀 자랑을 늘어놓는 할머니가 되었다. 각자의 가정끼리 만찬 파티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식구 수가 늘어나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명절을 보낸다. 어느 날 갑자기 쑥 뽑혀와 낯 선 땅에 몸을 기댄 연한 뿌리가 이제는 깊게 땅을 움켜쥐고 영역을 넓혔다. 분명 혼자였는데 세월과 함께, 땀과 함께, 눈물과 함께 가족이라는 뿌리가 단단하게 엮여 벋어나갔다.

 

 어느 여름방학의 가족 여행이 떠오른다. 캘리포니아 북쪽 해안 도로를 따라 올라가 레드우드국립공원을 찾았다. 그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인 레드우드(Redwood)의 서식지다. 레드우드는 평균 키가 60-70미터인데 115미터까지 자란 나무도 있고, 수령이 2,400년이나 되어서 어른 열 명이 팔을 펼쳐 나무를 감싸도 모자랄 만큼 허리둘레가 굵은 나무도 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꼭대기가 어디인지 고개를 젖혀서 올려보느라고 어지러웠다. 웅장한 위세에 눌려 그저 뺨을 나무에 대고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웠는데 관광 안내자로부터 레드우드의 생태와 생명력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는 한 그루 한 그루가 엄숙하고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레드우드는 그 지역이 암반이기 때문에 뿌리가 불과 3-4 미터 밖에 내려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처럼 얕은 뿌리로 태풍이 거센 해안 지역에서 거대한 몸집을 지켜내는 비결이 놀라왔다. 레드우드는 뿌리가 땅 속 깊이 내려가지 못하는 만큼 옆으로 뻗어 곁의 나무뿌리와 손을 맞잡아 서로를 지탱해준다. 땅의 단면을 잘라보면 뿌리가 촘촘히 얽혀 연결된 것이 마치 거대한 하나의 나무가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 연합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때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위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가물어서 영양분이 부족할 때는 가진 것을 약한 나무에게 나누어 준다. 평화로울 때는 덤덤하지만 시련의 순간에는 무서운 결집과 인내력으로 서로를 지켜주는 레드우드다. 혼자서는 살 수 없지만 더불어 함께함으로써 나날이 무량해지는 숲. 그곳은 거룩한 사랑 공동체가 함께 하는 곳이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며 왜 갑자기 레드우드 숲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한 밤중에 들려온 교통사고 소식에 슬리퍼 바람으로 뛰어가 서성이던 병원 복도, 갱 사건에 연루된 사춘기 아들의 구제를 위해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위로해 주던 일,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몰라 오히려 아이의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다니던 답답함, 4.29 폭동으로 불탄 가게 앞에서 넋을 놓고 한 줄로 주욱 앉아 땅만 내려다보고 있던 얼굴들. 아이의 명문대 합격 소식에 열광하고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며 흥분하던 시간, 결혼과 출산을 축하해주던 - 돌아보면 길고 긴 격동의 시간을 한 순간인 듯 우리는 흘려보냈다.

 

 함께 했던 자잘한 일상의 우승과 열패가 얼기설기 엮여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뿌리가 되었을까. 남루한 뿌리로 시작된 레드우드 숲이 이제는 2세와 3세에게로 이어진다. 비록 우리는 갈팡질팡 헤매었지만 그들이 가꾸는 숲은 안정되고 풍요롭게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에세이 21]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