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희
재미수필가
오늘부터 사흘간 멕시코 깜뽀 지역으로 의료 선교를 떠난다. 의사와 간호사, 약사, 한의사 등 열두 명이 함께하는 여행이다. 오렌지카운티에서 네 시간 반을 달리니 멕시코 국경이다.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통과한다는 것이 겨우 고무 범퍼를 울렁이며 넘는 거다. 큰 기계가 차체를 통째로 지나가며 스캔하고 사람은 내려서 옆길로 빠져나간다. 스캔이 끝난 차를 들여다보던 국경경비군인이 택스를 내라고 한다. 6천500페소. 346달러쯤 된다.
자기네 아이들 주려고 가져가는 선물에도 택스를 매긴다.
드디어 멕시코 땅이다. 미국인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 바닷가 도시 엔세나다를 지나 세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오른쪽은 흙더미가 술술 굴러 내리는 산등성이고 왼쪽은 깊은 절벽이다. 좁은 2차선 도로를 따라가는데 유튜브에서 본 중국의 꼬불꼬불 기암절벽이 생각난다. 앞차가 가지 않고 기다려서 사고가 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도로는 좁고 돌과 흙더미가 굴러 내리니 한 차선을 막아놓고 한쪽의 차만 보내고 있다.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이는 사막 땅을 달려 드디어 도착했다. 시간 절약하느라 점심도 차 안에서 김밥으로 때우며 무려 열 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넓은 사막 한복판에 기다란 1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아이들과 개가 뒤엉켜 뛰어놀다가 차를 보고 달려나와 반긴다.간단히 짐을 풀고 의료팀은 30분 걸려 가는 마을로 떠났다. 교인이 네 명뿐인 교회의 동네 사람들에게 진료를 해준다고 했다. 의료팀이 왁작 떠나고 남은 두 사람이 저녁밥을 지었다. 우리는 간호사도 아니고 약사도 아니라서 그저 뒷일 처리반으로 따라왔다. 화장실도 부엌도 먼지 풀풀 날리고 냄새도 역하고 사람 사는 환경이라고 도무지 할 수 없다.
저녁 8시가 되어 모두 허기지고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 행복해한다.
두 시간 동안 무려 서른일곱 명이나 진료를 했다고 한다. 완전 북새통이었노라고 마치 승전한 용사들처럼 흥분이다. 누가 오버타임 수당을 줄 테니 연휴에 나가서 환자를 보라고 하면 오케이 할 사람이 있을까? 짐을 잔뜩 실은 좁은 차 안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열 시간을 시달리고 달려온 것도 모자라서 또 환자를 치료하고 돌아와 맛있게 밥을 먹는 착한 사람들. 이들의 마음속에 역사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까.
새벽에 바닷가로 갔다.이른 아침이라 뿌연 안개가 온 바다를 덮었다.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침몰하여 떠내려 왔다는 배 한 척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해변에 누워 파도를 맞는다. 얼마나 많은 젊은 청년이 희생되고 그 가족의 눈물이 있었을까. 새까맣게 녹슨 폐선의 뼈를 보며 잠시 숙연해진다.
머리가 허연 사람들이 돌멩이가 예쁘다며 하나씩 들고 즐거워한다. 자연 앞에서는 어떤 사람도 어린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하나님의 피창조물 중에 변한 건 오직 인간뿐. 변하지 않은 창조물은 우리 안에 내재한 순수함과 천진함을 마구 끄집어내는 위력이 있다. 뒤틀린 고무줄을 도로 풀어주면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것처럼 우리 안의 뒤틀린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본연의 순수함으로 되돌려 주는 건 오직 말씀과 기도가 아닐까. 암만 바쁘고 복잡해도 그것만은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할 텐데….
숙소에서 차를 몰고 15분쯤 가니 똑같이 생긴 집이 한 무리 있다. 근래에 지은 주택가인가 보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시골 동네에 새로 연립 주택이 들어선 그런 모양새다. 집집이 TV 안테나가 달렸다. 지붕 위에는 시커멓고 큰 둥근 고무 물통이 있다. 집안에 사용하는 물은 모두 이곳에 모아두고 수도꼭지를 설치하여 물을 내려서 쓴다. 우리 밴이 어린이 찬송가를 확성기로 울리며 커다란 공터로 들어서니 구석구석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온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만 되면 확성기를 들고 나타나던 교회의 언니 오빠들 생각이 난다. 그들은 찬송가를 크게 틀고는 온 동네 아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쳐 주며 교회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과자랑 사탕, 연필과 공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긴 여름 방학 어느 순간이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올망졸망 모여 앉은 아이들을 살펴본다. 어떤 아이는 동생을 챙기느라 바쁘다. 신발이 없어 맨발인 아이도 있다. 예배가 끝나자 쿠키를 하나씩 나누어준다. 머리가 긴 여자아이 하나가 과자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가더니 한참 뒤에 나왔다. 손에는 반으로 줄어든 과자 봉투가 쥐여져 있다. 집에 동생이 있을까,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가 있을까. 겨우 여섯 개가 들어 있는 쿠키를 나누어주고 오는 모습에 마음이 찡하다 황토뻘이 잔뜩 묻은 맨발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옛날 어렵던 시절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하던 한국의 누이들 생각이 났다.